고위험 고수익 '액티브'냐, 저위험 저수익 '패시브'냐... 펀드전략 논쟁

    입력 : 2016.12.12 09:33

    [액티브·패시브, 시장의 승자는]


    기업 가치에 투자하는 '액티브', 과거 펀드 시장 대세였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ETF 같은 '패시브'로 자금 쏠려
    액티브, 신흥국에서 생존율 높고 중소형주·가치주 투자 성과 좋아
    수익률 강세 뚜렷한 패시브 펀드, 국내서도 당분간 열기 이어질 듯


    지난 8월 미국 월가에서는 글로벌 투자자문 회사 샌포드번스타인의 애널리스트들이 쓴 글이 화제였다. '노예제도로 가는 침묵의 길: 패시브 투자가 마르크스주의보다 나쁜 이유(Silent Road to Serfdom: Why Passive Investing is Worse than Marxism)'라는 제목의 글이다. 글의 요지는 좋은 기업에는 자본이 더 많이 배분되고, 부실한 기업에서는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시장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데, 시장을 그대로 따라가는 패시브 투자자가 대세가 된다면 자본의 효율적 배분이 이뤄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표적인 패시브 펀드 운용사 뱅가드의 잭 보글 창립자는 "패시브 펀드는 지난 40년간 투자자들이 1조달러(약 1100조원) 이상을 벌어들이게 하는 등 엄청난 가치를 창출했다"면서 "패시브 투자가 금융시장을 위협하려면 현재보다 그 규모가 훨씬 더 커져야 할 것"이라고 맞서며 논쟁을 지속하고 있다.


    과거 펀드시장에서는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가 향후 시장 전망을 바탕으로 '오를 만한' 종목을 골라 포트폴리오에 담는 액티브 펀드가 대세였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는 인덱스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 추종하는 지수의 등락 폭만큼의 수익률을 추구하는 패시브 펀드가 급성장하면서 액티브파(派)와 패시브파 사이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액티브·패시브 논쟁


    액티브 투자와 패시브 투자에 관한 논쟁은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1949년 자신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에서 기업 가치를 평가한 뒤, 기업 가치보다 현재 주가가 낮은 회사에 투자하는 '가치 투자' 이론을 정립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액티브 투자의 '원형(原形)'으로 보고 있다. 그의 투자 철학은 워런 버핏을 통해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반론이 나왔다. 기술적 분석의 일종인 '퀀트 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제학자 해리 마코위츠가 1952년 '포트폴리오 선택'이라는 논문을 내놓으면서 "좋은 종목을 고르는 것보다 최적의 포트폴리오로 분산투자하는 것이 시장을 이기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유진 파마 교수가 '효율적 시장 가설'(1965년)을 내놓으면서 패시브 투자의 이론이 정립됐다. 그는 "효율적 시장에서는 금융자산의 가격이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즉각적으로 반영하고 있어 시장 평균 이상의 수익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1988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실험은 효율적 시장 가설을 뒷받침하는 한 예다. WSJ는 눈을 가린 원숭이가 다트를 던져 구성한 포트폴리오와 전문가 4명이 구성한 포트폴리오를 대결시켰는데, 14년간의 실험에서 원숭이가 2.3%, 애널리스트가 1.2%의 수익률을 각각 올리면서 원숭이의 승리로 끝났다.


    ◇금융 위기 이후 패시브 펀드로 자금 쏠려… 5년 내에 주식형 펀드 절반 될 수도


    이 같은 논쟁이 지속하다 패시브 펀드가 급격히 성장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부터다. 글로벌 펀드 정보 업체 이머징마켓포트폴리오리서치(EPFR)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전 세계 펀드시장에서 ETF로 1조2490억달러(약 1465조원)가 유입됐지만, ETF를 제외한 다른 펀드에서는 1조3652억달러(약 1601조원)가 빠져나갔다. 액티브 펀드의 수익률이 급감한 반면 ETF 같은 패시브 펀드의 위험관리 능력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으로 기대수익률이 낮아진 가운데 운용 수수료가 낮다는 점도 패시브 펀드가 주목받은 이유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주식형 펀드의 순자산은 8조달러(약 9384조원)가량으로 이 중 패시브 펀드의 대표격인 ETF의 순자산은 31%(2조5000억달러·약 2939조원)가량이다. 도이체방크는 앞으로 5년 내에 패시브 펀드의 비중이 전체 주식형 펀드의 40~50%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액티브 펀드 '생존율' 최근 10년간 29% 정도… 한국 시장도 당분간 패시브 펀드 강세 예상


    펀드 분석 기관 모닝스타는 '액티브/패시브 바로미터(Morningstar's Active/Passive Barometer)' 보고서에서 일정 기간 같은 유형의 패시브 펀드보다 수익률이 높았던 액티브 펀드를 생존한 것으로 보고, 이를 '액티브 펀드 생존율'로 정의했다. 미국 시장을 기준으로 최근 10년간 액티브 펀드의 생존율은 29.2%였다. 10년 동안 10개 중 3개의 액티브 펀드만이 같은 유형의 패시브 펀드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는 의미다.


    패시브 펀드의 수익률 강세가 뚜렷하지만 투자 지역별, 크기별, 스타일별로는 차이를 나타냈다. 액티브 펀드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일 수 있는 '틈새'가 있다는 의미다. 해외 시장 전체(33.9%)보다 신흥국 시장(42.3%)에서 액티브 펀드의 생존율이 높았고, 대형주 펀드(20.8%)보다 중형주 펀드(28.6%), 소형주 펀드(28.7%)에서 액티브 펀드의 성과가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혼합형(17.4%)·성장형(22.6%) 펀드보다 가치주에 투자하는 펀드(38.1%)에서 액티브 펀드의 성과가 나았다. 상대적으로 비효율이 높은 시장에서 액티브 펀드의 수익률이 높게 나온 것이다. 금융업이 성숙한 미국보다 신흥국이, 공개된 정보가 많은 대형주보다 그렇지 않은 소형주가, 미래 가능성이 조명받는 성장주보다 시장의 관심에서 소외된 가치주가 펀드매니저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시장에서도 대체로 삼성전자 및 대형주, 가치주가 강세를 나타내는 국면에서는 패시브 펀드가 강세를 보였다. 반면 2003년과 2005년처럼 주가지수가 30% 이상 강하게 상승할 때나 2013~2014년처럼 삼성전자가 약세를 보이고 중·소형주가 강세가 나타났을 때는 액티브 펀드의 성과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시장에서는 최근 중·소형주나 성장주보다 대형주·가치주의 상대적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어 당분간 패시브 펀드의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