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란 모두애치과 원장 "나누면요? 그냥 너무 행복해요!"

  • Interview 정선혜 방송인·교수·패션스타일리스트

    입력 : 2016.12.06 14:17

    여려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당차게 타인과 나누고 소외 계층을 돌보는 인생을 사는 우리 시대의 젊은 리더 정유란 모두애치과 원장을 만났다.



    어느 해 보다 부쩍 빨라진 서늘한 바람이 이제 익숙해질 만한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이라는 인상이 주는 그 스산한 느낌은 옷깃 속 그 틈으로 슬며시 파고든다.


    계절과 시대가 주는 냉기로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안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의 따스함이 그립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린 숭고한 삶을 살았던 분들을 우리는 위인으로 존경하고 흠모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한창 일궈야 할 일이 많은 30대 젊은 나이에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 나와는 상관없다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팍팍한 현실에 더욱 빛이 나는 사람일 것이다.


    오늘 만날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여성 치과의사다. 대한민국을 강조한 이유는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처럼 의사의 손길이 시급한 외국의 습하고 외진 마을로 정기적으로 인술을 펼치기 때문이다. 소위, 잘 나가는 사회적 지위를 갖추고 있는, 그리고 여리고 여린 그녀가 다른 젊은 사람들처럼 햇살 좋은 휴양지를 마다하고 고된 삶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누는 삶은 어떤 기분일까? 어떤 보람이 있을까?


    그녀의 솔직한 스토리를 들어보고 싶어 그녀의 일터를 불쑥 찾았다. 햇살이 부서지는 창가에서 수줍은 듯 미소 지으며 인사를 하는 정유란 원장. 주변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어수선했지만, 그녀가 다소곳이 앉아 있는 주변의 공기는 참 신기하게도 차분하고 맑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따스하게 건네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마치 외진 곳에서 처음 보는 의사선생님의 상냥함이 스며든 소박하면서도 낭랑한 힘이 배어있었다.



    정선혜 : 주변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정유란 모두애치과 원장(이하 정유란) : 요즘은 새로 개원 준비로 바쁘다. 꿈을 담은 치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겼다. 오늘도 치과 간판과 내부 사인들을 달고 재료들을 들여오고 그 와중에 세미나도 진행하는 등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런 일들로 항상 가던 봉사활동 하나를 가지 못해서 참으로 아쉽다.


    정선혜 : 어떤 활동들을 하는가?


    정유란 : 치과 업무 틈틈이 봉사활동이나 사회활동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열린 의사회'라는 단체에서 수년간 해외 봉사 등을 하는데, 내과, 산부인과, 외과 등의 다양한 분야의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 함께하는 의료 봉사활동이다. 열린 의사회 활동 중에는 지난 몽골에 갔던 기억이 인상적이다.


    정선혜 : 이 맘 때 간다는 봉사는 어떤 일인가?


    정유란 : 대한여자치과 의사회에서 공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항상 11월 말이면 대한여자치과 의사회 임원진 의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3~4명씩 팀을 이뤄 캄보디아 파일린으로 봉사활동을 간다.


    정선혜 : 그 곳에선 막내일 것 같다.


    정유란 : 실질적으로 막내인 셈이다. 대부분 40~60대이다. 30대는 거의 없다. 그리고 나처럼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이가 거의 없어서 늘 일손이 모자라는 편이다.


    정선혜 : 치과 의료봉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정유란 : 의료봉사팀들이 도착하면 현지인들이 많이 도와주신다. 그곳은 주변에 치과가 하나도 없는 불모지인데 우리 팀이 1년에 한 번씩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작년에 진료 받았던 사람이 오기도 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온다. 우리나라의 건강 검진처럼 오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일회성 봉사가 아니라 해를 거르지 않고 가야하는 곳이 되었고 우리는 또 가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 뽑거나 스케일링 정도로 여건상 일회성 진료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정작 필요한 충치나 신경 치료가 힘들었다. 기구도 들고 가기 힘들고 한 번에 끝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한여자치과 의사회 의료봉사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매년 4~5일 머물면서 봉사를 한다. 기술도 발전해서 보철, 신경치료도 해주고 올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봉사활동 해주는 폭이 더 넓어질 것 같다.



    정선혜 : 봉사활동 중 어려웠던 점은?


    정유란 : 언어 문제가 제일 크다. 물론 통역자와 자원봉사자도 있다. 현지인도 많이 돕는다. 이런 분들 덕분에 해외 의료 봉사가 가능하다. 이 분들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지인과 통역하면 사투리로 다시 통역하는 식으로 2중 통역을 거쳐야 하는 사례가 많다. 통역하는 분들이 치아 치료에 필요한 언어를 아는 전문 통역사가 아니다 보니 치과 치료에 필요한 언어도 쉽게 통역해 줄 분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왜냐면 현지인들은 몇 년에 한 번, 혹은 평생 처음으로 치료를 받다 보니 치료해야 할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루 종일 치료를 위해 기다리지만 우리의 진료기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분명히 그들에게도 가장 원하는 부분을 먼저 치료해야만 한다.


    정선혜 : 현지에서 지내는 것은 어떤가?


    정유란 : 일정동안 대부분을 현지인들 숙소에서 먹고 지내다 보니 봉사활동에서 음식들이 안 맞거나 하면 정말 힘들다. 다행히도 저는 숙소나 음식에서 까다롭지가 않아 지내는 것에 어려운 부분은 없다. 가끔 침대 위로 도마뱀도 올라오는데 자다 눈을 떠보면 얼굴 옆에서 날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다(웃음). 나는 무섭다기보다 귀여웠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해외봉사도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선혜 : 여행보다 봉사활동으로 방문한 나라가 더 많을 것 같다.


    정유란 : 그렇다. 의과대학 시절부터 봉사활동을 해 왔다. 러시아, 몽골, 필리핀, 캄보디아 등 많은 나라를 다녔다. 봉사활동으로 1년에 한두 번씩 나가다 보니 휴가차 출국한 횟수보다 더 많다.


    정선혜 : 젊은 여의사로서 하고 싶은 것이 많을 텐데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이 신선하다.


    정유란 : 1년 내내 봉사만 하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경건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그냥 틈틈이 하는 것이다. 의료봉사라고 해서 거창해 보이지만 일 년을 놓고 보면 많지도 않다. 그저 그렇게 계속 하는 거다. 내게 있어선 맘만 먹으면 되는 일이다. 어려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봉사 활동을 '희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봉사를 하는 시간에 뭔가를 사거나 놀거나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것들은 나에겐 의미가 없었다.



    정선혜 : 국내 의료봉사는 어떠한가?


    정유란 : 국내는 치과도 많고 보건소도 잘 되어 있어 봉사 할 일이 많지 않다. 잘 된 일이고 아주 정상적인 것이다. 이런 나라가 좋은 나라인 것이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이주민들과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주말봉사를 가끔씩 가는 정도로 활동하고 있다.


    정선혜 : 봉사를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적은?


    정유란 : 몽골에 갔을 때 일이다. 나는 타국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몽골의 전통 주택과 초원도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봉사에만 열중해야 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께서 치료 받은 다음 날, '마유주'라는 걸 들고 오셨다. 말 젖과 술을 섞은 것인데 흔히들 '정말 비위 상하는 맛'이라고들 하더라. 한국인들이 마시면 다음 날 배가 아플 것이라며 주변에서 말렸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에 마셔봤다. 그게 어떤 느낌이었냐면, 역시나 정말 맛이 없었다. 하지만 그 먼 길을 다시 걸어 마유주를 꼭 주고 싶어 하신 할머니 마음이 고마웠기에 마시는 것도 즐거웠다.


    또 다른 감동은 현지 간호사들을 통해서이다. 의료봉사 활동장소는 지역 보건소 같은 공공기관에서 임시의자와 간이시설 등으로 이뤄진다. 현지 간호사들이 치과위생사처럼 보조를 해주며 도움을 주는데 같은 의료 일처럼 보여도 치과 쪽은 업무가 완전히 달라 처음엔 힘들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일일 텐데도 굉장히 빠르고 부지런히 잘해 주신다. 끝날 때 즈음이면 서로 작별에 아쉬워하며 슬퍼하곤 했다. 한 간호사는 스케일링을 하고 석션을 하고 나니 까만 이가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보고서는, 이는 꼭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교육도 해주고 가족들도 모두 데리고 왔다. 행동에서 의식까지 달라져 주변인들에게 치아 관리의 교육까지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정선혜 : 어떻게 봉사에 관심을 가졌는가?


    정유란 : 어렸을 때부터 봉사에 관심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옷이 너무 예뻐 꼭 입고 싶어 시작한 걸스카우트 활동이 계기가 됐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베푼다는 마음보다는 나누는 정도의 마음으로 그렇게 시작한 것 같다. 대학시절에는 시설에 있는 여자아이에게 공부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재능기부와 같은 봉사활동들은 꾸준히 했었다.



    정선혜 : 어릴 적 모습을 추억한다면?


    정유란 : 바른 어린이였던 것 같다. 말썽도 많이 피웠을 텐데 기억이 잘 안 난다. 나한테 불리한 건 다 잊어버렸다. 기억나는 일이라면, 중학생 때 걸스카우트 세계대회가 한국 무주에서 열린 적이 있다. 4~5년에 한 번 전 세계의 걸스카우트가 한 나라에 모이는 축제였는데, 그때 기자 활동을 하면서 취재도 많이 하고 외국 걸스카우트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거웠던 순간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부터 외국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나와는 다르지만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그 느낌들을 공유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해외봉사도 이렇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선혜 : 봉사와 연관된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치과의사를 선택했다.


    정유란 : 솔직하게 말하자면 딱히 하고 싶었던 것은 없었다. 막연하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을 가고 직업을 가지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서 도움이 되는 일을 찾으며 그냥 내 자리에서 할 일을 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오고 있다.


    정선혜 : 앞으로의 계획은?


    정유란 : "사람들이 원하는 치과"를 만들고 싶다. '원하는 치과'란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는 치과다. 사람들이 치과에 오기 싫어하는 이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돈이 많이 들어서이고, 둘째는 아프니까 이다. 그래서 안 아프게, 돈이 많이 안 드는 치과를 운영하고 싶다. 음식점도 비싼 곳도 있고 싼 곳도 있듯이 비싼 병원이 있고 싼 병원도 있다. 누구나 편하게 오는 그런 치과를 만드는 것이 희망이다.
    그 시작은 꾸준한 정기검진을 통해서이다.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나게 비싼 돈이 드는 것이 아니라, 3개월에 한 번씩 와서 잡담도 하다가 사진도 찍어보고 이전의 양치 상태와 지금의 모습도 비교해 보고 잘 안됐으면 교육도 받고, 그렇게 꾸준한 정기검진을 통해서 누구나 편하게 오고 가는 치과, 사람들과 가까운 치과가 되고 싶다.


    정선혜 : 그런 생각을 한 계기가 있나?


    정유란 : 봉사활동을 가면 그런 경우가 많다. 1년에 한 번씩 오랜만에 가다 보니 자주 볼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아닐 거 같은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다. 예를 들면, 왼쪽 치아를 먼저 보철로 하면 좋겠는데, 그 사람은 오른쪽 치아를 빼고 싶어했다. 그런데 1년 후에 가면 왼쪽 치아마저도 뽑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보면서 꾸준한 관리와 검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사람들은 본인의 건강상태에 대해 잘못된 생각들을 가진 경우가 있다. 충치 먼저 치료하고 이를 나중에 뽑으라는 말을 안 듣고 결국엔 양쪽 다 뽑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진료할 때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의사가 환자와 대화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경우에 주로 이런 일이 생긴다. 의사는 본인의 발언으로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고 성향상 말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치과는 오랜만에 오면 당연히 치료할 것이 많아지고 비싸진다. 조금만 자주 오면 그 전에 예방할 수 있다. 자주 오지 못한 이유는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검진을 자주 볼 수 있으면 의사가 특별한 치료를 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교육을 통해 더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기 위한 동기부여와 관리를 해주고 싶다.


    정선혜 : 자신이 그리는 삶의 방향이 있는가?


    정유란 : 환자를 대할 때 정말 좋은 게 있으면 권하고, 내게 책임으로 돌아오더라도 환자를 위한 의지를 가지며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환자에게 알리고 설득해서라도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의사가 될 것이다. 내 일에 있어서 정의롭게 일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렇게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정유란 원장의 스토리를 마치며


    요즘 시절이 어지럽다. 정의로운 진실을 만나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들 한다. 역사책이나 독립투사의 일화를 통해 들어야 했던 그 '정의'라는 말이 젊은 여의사를 통해 툭 던져질 때 나는 조금 충격이었다. 삶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덤덤히 펼쳐 나가고 있는 그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면 과장일까? 어찌 보면 평범한 우리 이웃 같기도 한 그녀이지만 나조차도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함께 나누는 삶'을 그녀는 '일상'으로 일구어가고 있었다. 건강한 사회가 되는 첫 걸음은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이들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오늘 만난 정유란 원장을 통해 나는 새로운 젊은 리더들이 만들어 나가는 건강한 다음 세대의 희망이 느껴져서 반갑고 즐거웠다.


    정유란 원장의 함께 나누는 사랑이 촛불처럼 주변을 밝혀 나갈 것을 기대해 본다.


    출처 및 기사 링크
    리더피아
    www.leader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