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신사업·M&A 등 기밀까지 국회에 내라니..."

    입력 : 2016.12.02 09:46

    [내주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의원들의 마구잡이式 자료 요구에 난감]


    - 자료제출 거부땐 최대 징역 3년
    "극비 문서 요구하며 민원 청탁
    다른 기업의 약점 알려주면 잘 봐주겠다며 '거래' 제안도
    어느 선까지 공개할지 고민중"


    "박근혜 정부 이후 추진한 모든 신규 사업 자료를 제출하라고 해서 난감합니다. 신규 사업 자료는 그룹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핵심 영업 비밀입니다.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 규명에는 적극 협조하겠지만 기업의 영업 비밀까지 공개하라니 어떻게 해야 하나요?"(10대 그룹 관계자)



    주요 그룹이 오는 6일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총수(總帥) 청문회' 증인 출석을 앞두고, 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무리한 자료 제출 요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대 수십 건에 달하는 자료를 제출하라며 '자료 제출 폭탄'을 쏟아내는가 하면 신규 사업 추진 내용이나 이사회 회의록 등 보안 유지가 필수적인 자료까지 내놓으라고 압박하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선 자료 제출을 거부하다가는 증인으로 출석할 총수가 괘씸죄에 걸릴 수 있어 제출 자료 수위 조절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마구잡이 자료 제출 요구에 난감"


    총수가 6일 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GS·한진·한화·CJ그룹 등 아홉 그룹은 대관(對官)·법무 부서를 중심으로 국회가 요구한 자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 10대 그룹 관계자는 "막연하게 'OO 관련 자료 일체'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의원이 적지 않은데 일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부터 헷갈린다"면서 "청문회가 열리기 직전까지 자료를 준비하느라 이번 주말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그룹들은 공통적으로 지난해 7월과 올해 2~3월 총수가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獨對)한 경위, 독대 자리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자료로 제출할 것을 요구받았다. 또 최순실씨가 배후에서 설립을 주도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 경위도 자료로 제출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 수사 중인 사안을 특위에 제출하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300~400페이지 달하는 자료집 - 국회 최순실 국정조사 특위의 요구에 따라 일부 기업이 제출한 자료집. 현대차와 포스코의 자료집은 각 300~400페이지 분량이다. /장상진 기자


    상당수 그룹은 박근혜 정부의 역점 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 관련 자료 제출도 요구받았다. 일부 의원은 2008년부터 현재까지 기업별 기부금 지급 내용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집행한 기부금 내용까지 포함한 것이다.


    ◇일부 의원은 영업 기밀 제출 요구에 민원 청탁도


    재계가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 이후 추진한 신규 사업과 인수·합병(M&A)에 대한 모든 자료를 요구한 부분이다. 신규 사업이나 M&A 자료에는 해당 사업이나 대상 기업에 대한 검토 및 실사(實査) 자료가 담겨 원칙적으로 외부 유출을 안 하는 극비 문서이다. 이사회 회의록을 제출하라는 요구도 논란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이사회는 신규 사업, 신규 투자, M&A 등 굵직한 경영 현안을 결정하는 자리라, 기업의 전략이나 내밀한 정보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M&A 자료나 이사회 회의록이 공개되면 회사 전략이 노출되고 주식시장에도 파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리한 자료 요구가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국정조사 특위에 자료 공개를 거부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다. 국회법은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채택되고도 불출석하거나 서류 제출 요구를 거절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증인이나 기관의 증언, 보고 내용 등이 사실과 다르면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의원들이 제출받은 영업 비밀 자료를 다른 곳에 유출하더라도 손을 쓸 방도가 없어 어느 선까지 공개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몇몇 의원실로부터 청문회를 매개로 '흥정 거래'를 제안받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 기업 관계자는 "일부 의원실에서 '당신 그룹 총수는 좀 봐줄 테니 다른 그룹의 약점을 알려 달라'는 요청이나 '그동안 기부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우리 의원 지역구에도 기부를 좀 해 달라'는 요구를 해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