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IB' 승부수 던진 증권사 빅5

    입력 : 2016.11.30 09:33

    자기자본 4조원 이상 1단계 기준 충족 땐 사업 영역 크게 넓어져
    "수입원 늘릴 기회" 치열한 경쟁


    외국 대형 증권사들과 무한 경쟁…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진 미지수


    한국의 탄탄한 기업과 공공기관들이 발행하는 채권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하지만, '글로벌 채권'(달러 표시 채권)을 판매하는 현장엔 한국 증권사 직원이 안 보이고, 골드만삭스·도이체방크 같은 외국계 IB(투자은행) 담당자들이 주도한다. 채권을 팔아주고 IB가 받는 수수료는 1% 정도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1조원어치 채권을 발행하면 100억원에 이르는 수수료 대부분이 외국 IB로 흘러들어 간다"며 "하지만 채권 발행기업 입장에선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가 탄탄한 IB를 외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처럼 존재감이 미약한 한국 증권사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금융위원회가 지난 8월 발표한 한국형 '초대형 IB 육성 프로젝트'에 증권사들이 속속 출사표(出師表)를 던지고 있다.



    금융위는 자기자본 금액 기준을 충족하는 증권사에 단계적으로 규제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1단계 기준을 '자기자본 4조원 이상'으로 정했다.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이 합친 통합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이 가장 먼저 이 기준선을 통과한 데 이어 28일엔 한국투자증권이 유상증자(1조7000억원)를 통해 자기자본을 4조200억원까지 늘림으로써 '초대형 IB' 대열에 합류했다. 여기에 삼성증권과 현대·KB투자증권이 합쳐져 12월에 출범할 KB증권도 조만간 자기자본 4조원을 무난히 넘길 전망이어서, 5대 대형 증권사들이 글로벌 IB로 도약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투 '다양성', 미래에셋대우 '규모'


    1단계 조건(자기자본 4조원 이상)을 충족한 증권사는 채권보다 발행 조건이 덜 까다로운 '발행어음'(증권사가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어음. 만기는 보통 1년 이하이고 채권처럼 정해진 금리를 줌)을 통해 IB 업무에 필요한 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다. 기업 고객에는 외국환 업무를 할 수 있다. 2단계 조건(자기자본 8조원 이상)을 충족하면 은행 통장과 비슷한 '종합금융투자계좌'(IMA)를 개설할 수 있고, 은행에만 허용되는 부동산 담보 신탁 업무도 가능해진다.


    경쟁 격화와 저금리로 증권거래수수료 수입 등 기존의 수입원이 계속 줄어든 증권사들은 초대형 IB 육성책을 발판으로 새 수입원을 발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태세다. 단, 증권사마다 전략엔 꽤 차이가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초대형 IB를 사업 다각화를 통한 시너지 창출의 촉매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한투증권은 최근 지분 4%를 인수한 우리은행, 내년에 출발하는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한국금융지주 지분 57% 보유)에 초대형 IB라는 또 다른 신(新)사업을 더해 '다양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압도적인 '몸집'으로 세를 과시한다. 다른 증권사가 '4조원' 기준선을 간신히 넘은 것과 달리 통합 미래에셋대우는 자기자본이 약 6조7000억원에 달한다. 보다 다양한 업무가 가능해지는, 2단계 초대형 IB 기준선인 자기자본 8조원을 넘볼 수 있는 증권사는 현재로선 미래에셋대우가 유일하다.


    ◇사업 영역 확대 모색…실제 수익은 "두고 봐야"


    NH투자증권은 미국 부티크(소형) IB인 에버코어, 인도네시아 IB 다나렉 등과 잇달아 제휴하며 해외 네트워크를 탄탄히 다지고 있다. KB금융은 "KB증권의 '롤모델'은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라고 말했다. 금융지주회사의 강점을 살려 은행과 IB를 효율적으로 결합, IB에 강한 메릴린치(증권사) 인수로 종합 금융회사로 성장한 BoA와 비슷한 모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아직 자본 확충 방안을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삼성증권은 초대형 IB가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군을 고액 자산가의 자산 관리에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들은 사업 영역 개척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초대형 IB의 사업 모델이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의견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말레이시아의 대형 증권사들은 자기자본이 수십조원에 달하지만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선 밀린다"며 "한국 증권사들이 IB 사업으로 수익을 크게 늘리려면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