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든 임종룡이든... 빨리 결론 내려 '경제 공백' 끊어라

    입력 : 2016.11.23 10:03

    [국정농단 & 탄핵정국]


    柳부총리 세종청사 방은 이달 내내 텅 비어… 任후보자는 업무 보고 못 받는 상태


    트럼프가 요구하는 FTA 재협상 아직도 대응작업 착수하지 못해
    구조조정·규제완화 작업도 지연


    유일호·임종룡 스타일 크게 달라
    관료들 "누구에 맞춰야하나" 푸념


    요즘 선진국 경제 관료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누구를 재무장관으로 지명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가 예고한 강경한 환율 정책을 집행할 재무장관이 결정되는 대로 온갖 경로를 가동해 물밑 대화를 시도할 태세다. 우리나라는 특히 G2(미국·중국)가 환율 전쟁을 벌이면 중간에 낀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아 어느 나라보다 미국 재무장관 인선을 눈여겨봐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미국 재무장관의 상대인 경제부총리가 누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다른 나라보다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고, 고스란히 국익(國益)에 해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각종 경제지표가 줄줄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선장 없이 떠돌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두 경제부총리'에 정책 올스톱


    현재로서는 유일호 부총리가 언제까지 재임할지, 임종룡(현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취임할 수 있을지가 모두 안갯속이다. '두 보스'를 둔 경제 관료들은 "누구 장단에 맞춰 일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푸념이다. 우선 정부의 1년치 계획인 내년 경제정책 방향의 기본 뼈대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누가 지휘자냐에 따라 경제정책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유 부총리와 임 위원장의 철학은 상당히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유 부총리는 나랏돈을 대거 풀어 경기를 살리는 데 소극적이다. 국가 채무를 늘리는 데 반감이 큰 재정학자라서 그렇다. 또 부동산 경기 부양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가계 부채 증가세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성향이다. 임 위원장은 반대다. 지난 2일 경제부총리에 지명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겠다"고 했고 "부동산 투기를 용납하지 않고, 가계 부채 증가세를 억제하는 데 힘을 쓰겠다"고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급한 대로 일단 '유일호 스타일'로 만들었다가 임 위원장이 취임하면 '임종룡 스타일'로 바꿀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책을 입안한 사람과 실행한 사람이 달라 혼선이 심해지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누가 됐든 경제부총리 빨리 정해야


    경제부총리가 전면에 나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일도 줄줄이 뒤로 밀리고 있다. 철강·석유화학·건설 업종의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 트럼프가 요구하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지만 대응 작업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부총리 리더십이 사라지면서 많은 부처가 업무 공백을 겪고 있다. 기재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이 합심해야 하는 규제 완화는 추동력이 떨어져 사실상 중단됐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자체 등의 지원이 끊겨 존립이 불투명한 처지에 놓였지만 미래창조과학부는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어정쩡한 상태인 유 부총리가 야당에 끌려다니고 있다. 예산안·세법개정안 심사 주도권은 야당이 선점한 지 오래다. 최근 야당이 내년 고용 예산 6400억원을 뭉텅이로 삭감했지만 정부·여당은 속수무책이었다.


    지휘자가 없다 보니 관료들도 의욕을 잃고 있고, 정부 부처의 조직 관리도 무너지고 있다. 기재부는 유 부총리와 송언석 2차관이 국회 일정을 이유로 이달 들어 22일까지 한 번도 세종청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기재부 직원들은 내내 비어있는 유 부총리의 집무실을 두고 "주인 없는 방"이라고 수근대는 실정이다. 임 위원장의 행보도 어정쩡할 수밖에 없다. 지난 2일 지명된 후 주말(5~6일)에 기재부 업무 보고를 받은 이후로는 더 이상 업무 보고도 받지 않고 있다. 인사(人事)도 올스톱이다. 정부의 손발 노릇을 해야 하는 공공 기관에서 기관장 임명이 지연돼 업무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혼란을 종식시키고 경제정책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경제부총리를 낙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 부총리가 계속 맡을지, 임 위원장이 후임으로 취임하든지, 그도 아니면 제3의 인물을 세우든지 간에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수장이 없는 상태가 오래가면 경제 위기에 버금가는 위험 요인이 생길 수 있다"며 "유일호든 임종룡이든 빨리 정해서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