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속도 내는 '삼성 금융지주회사'

    입력 : 2016.11.18 09:52

    이재용 부회장 체제 완성 위해 삼성물산 중심으로 그룹 재편 중
    금융계열사 소유 가능하려면 중간금융지주사 전환 서둘러야
    국회서 아직 법 통과 안 됐지만 삼성생명을 지주로 뭉치는 작업, 삼성화재 지분만 늘리면 완성


    삼성그룹이 중간금융지주사 틀을 짜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정권 이양' 작업을 벌이고 있는 삼성은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하는 지주회사 체제로 그룹을 재편 중이다. 대기업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선호하는 것은 대주주 일가가 지주회사 한 곳의 지분을 보유하는 것만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갈 경우,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가 금융계열사를 소유할 수 없다는 문제에 맞닥뜨린다. 이걸 풀어주자는 게 '중간금융지주사' 제도로, 금융사들로만 구성된 금융지주사는 일반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최근 정치 상황이 급변하면서 중간금융지주사의 운명도 안갯속이다. 정치권의 관심이 온통 국정 수습에 몰려 있어, 중간금융지주를 허용하는 관련 법안이 19대에서 폐기된 이후 20대 국회에선 발의조차 안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은 금융계열사를 중간금융지주로 묶는 작업을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 11일 2900억원을 들여 삼성증권 지분 10.94%를 추가로 사들여 증권에 대한 지분율을 끌어올리는 등 금융지주사로의 전환 채비를 일단 진행하고 있다. 삼성카드·삼성자산운용·삼성증권 등 금융 3사에 대해서는 지주사로서의 조건을 이미 완료했고, 이제 남은 것은 삼성화재다.


    ◇거의 완성된 '삼성금융지주'


    지난달 말 삼성전자 이사회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등기 이사로 선임돼 삼성그룹 제조 부문의 승계 작업은 큰 산을 넘었다. 앞으로 삼성전자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투자 부문을 삼성물산과 합병, 삼성물산을 공식적으로 그룹 전체 지주회사로 세우는 방향이 예상된다. 지난해 논란 속에 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해 물산을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잡아놨다.


    삼성의 미래 핵심 먹거리 중 하나인 금융 부문은 현재까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정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삼성생명·화재·증권 등 삼성의 금융 계열사는 작년 10월 말 각각 수천억원씩 투입해 자사주(自社株)를 샀다. 올 1월 삼성생명이 전자가 갖고 있던 카드사 지분 전량(37.45%)을 사들였고, 증권 지분도 두 차례에 걸쳐 매집하면서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삼성자산운용 지분도 지난해 각 계열사와 오너 일가로부터 넘겨받아 100% 가까이 확보했다. 금융지주사가 되려면 상장 금융 자회사 주식은 30% 이상, 비상장사 주식은 50% 이상 보유하면서 동시에 해당 자회사의 최대 주주 지위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삼성화재(지분율 14.98%)에 대한 지분율을 30%로 높이는 작업. 시장에서는 조만간 삼성생명이 화재 지분을 사들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현행법상 당장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전망도 많다. 보험업법 때문이다. 현행법상 보험사는 계열사 투자 한도가 총 자산의 3%로 묶여 있다. 돈 많은 보험사가 계열사의 돈줄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든 장치다. 이 규정에 따라 삼성생명이 계열사 지분을 사는 데 더 쓸 수 있는 돈은 약 3000억원 남짓, 삼성화재 지분율을 30%로 올리려면 2조원이 필요하다.


    ◇중간금융지주 안 돼도 '플랜B' 가동


    중간금융지주사를 허용하도록 공정거래법이 이른 시일 안에 개정될 게 난망한 상황이라 삼성이 일단 '그냥 금융지주' 체제를 굳히면서 다른 묘수를 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삼성생명 분할이 시나리오 중 하나다.


    삼성생명을 투자 부문(가칭 '삼성생명홀딩스')과 사업 부문으로 나눠, 화재·증권·자산운용·카드 지분을 투자 부문으로 몰아넣고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7.5%)은 삼성생명 사업 부문에 일단 '보관'해둔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로 전환을 신청하고, 부족한 삼성화재 지분 매입과 금융지주사로서 가질 수 없는 비금융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때까지 총 7년(사업 재편 기간 5년+유예 기간 2년)을 번다. 이 사이 삼성생명은 금쪽같은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 등에 팔아 그룹의 지배력을 보호하고, 판 돈으로 삼성화재 지분을 사들여 금융지주사 체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보험업법, 공정거래법, 금산법 등 여러 걸림돌이 있지만, 수년간 준비를 해온 만큼 삼성생명이 결국 금융지주사로 전환을 단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간금융지주가 허용되면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생명 지분 19.4%를 처분하지 않고 삼성생명을 물산의 자회사로 남겨둘 수 있어 편하겠지만, 중간금융지주 대신 삼성생명이 단순 금융지주사로만 전환하더라도 지배구조 개편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