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회오리, 최순실 특검 휘말린 재계... IMF후 최악 위기

    입력 : 2016.11.15 09:23

    ['최순실 게이트' 연루 주요그룹, 연말 인사·내년 투자 등 올스톱]


    - 수사 장기화 최대 장애물
    올 수출 佛·홍콩에 밀려 8위로… '버팀목' 부동산마저 한계 상황
    수사 대비하느라 아무것도 못해


    삼성, 조직개편 사실상 중단
    롯데, 지배구조 개선 등 손놔
    현대車, 북미시장 전략 고민


    여야가 14일 '최순실 게이트' 특검과 국정조사에 합의하면서 기업에 대한 수사도 단기간에 끝나기 어렵게 됐다. 앞서 주요 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장면이 외신에까지 보도되며 이미지 타격을 입은 기업들로서는 앞으로도 최소 3개월 이상 '수사 장기화'라는 장벽까지 만난 것이다. 여기에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까지 발생하면서 매출 부진과 구조조정이라는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기업들이 '3각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


    ◇내수·수출 악화 일로… 트럼프 변수에 대외 환경도 안갯속


    이미 우리 기업들은 안팎으로 침체에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 국내 30대 그룹은 올해 상반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3% 이상 감소하고, 투자는 30% 급감하는 등 'IMF 사태' 이후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수출과 내수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하락 신호'만 강해진다. 10월 수출은 1년 전보다 3.2% 감소했는데, 지난 8월 '반짝' 증가를 빼고는 2014년 12월 이후 2년 가까이 감소세다. 세계무역기구가 주요국의 올 1~8월 수출액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순위는 프랑스·홍콩에 밀려 작년보다 두 단계 낮은 세계 8위로 떨어졌다.



    내수도 취약하다. 9월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 등으로 소매 판매가 4.5% 줄었다. 5년 7개월 만의 최대 감소 폭이다. 제조업 가동률은 2012년 5월 이후 정상 가동 수준인 80%를 넘어본 적이 없다. 조선·해운 등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나면서 10월 제조업 취업자 수는 전년보다 11만5000명이 줄었다. 그동안 내수 버팀목이었던 부동산 시장은 단기간 급등에 따른 피로감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가계 부채는 역대 최고인 1300조원에 육박한다. 여기에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트럼프가 자신의 공약을 실현할지도 모른다는 게 불안감을 부추긴다.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최대 45%의 관세를 매기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에 전가될 것이 확실하다.


    ◇조직 혁신·구조조정 줄줄이 뒷전으로… "생존이 목표"


    기업들은 수년째 이어진 성장 정체를 돌파하기 위해 조직 혁신과 구조조정을 준비 중이었으나 최근 이런 작업들을 사실상 전면 중단한 상태다.


    현대자동차는 신흥 시장 침체와 환율 영향으로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30% 급감하고, 올해 판매 목표 813만대 달성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달 국내외 영업본부장을 일제히 바꾸고 전 임원 급여 10% 삭감 등 비상 조치까지 했다. 하지만 당장 트럼프 당선으로 내년 북미 시장 공략 전략을 수정해야 할 상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트럼프가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에 나서면 신흥 시장에 이어 미국 시장에서도 고전이 예상된다"며 "새해 영업 전략을 재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경영권 분쟁과 비자금 수사에 시달렸던 롯데그룹은 지난달 신동빈 회장이 불구속 기소 처분을 받은 뒤 경영 혁신안을 발표하며 재도약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신 회장이 또다시 검찰 조사를 받을 처지가 됐다. 이 때문에 지배 구조 개선 등 그룹 혁신 작업이 일시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도 당장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철강 수출 감소에 대비하면서 구조조정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권오준 회장이 차은택씨의 광고 계열사 '포레카' 강탈 과정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이런 과제는 뒷전으로 밀린 상태다.


    주요 그룹은 연말 정기 인사를 준비 중이지만 인사 폭과 조직 개편 등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보통 12월 초 임원 인사를 하는 삼성그룹은 올해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이사 선임과 삼성전자의 기업 문화 혁신 '선포'로 미래전략실 기능 축소 등 대대적 조직 개편까지 점쳐졌다. 하지만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에 삼성이 깊이 연관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규모 인사·조직 개편은 힘든 상황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혁신이나 구조조정이 아니라 당장 검찰 수사에 대비하면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