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전문은행·크라우드 펀딩... 규제 족쇄에 산으로 갈 판

    입력 : 2016.11.14 09:23

    [정부 4大개혁 과제'금융개혁', 용두사미 되나]


    - 인터넷 전문은행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 제한
    KT·카카오, 대규모 투자 못 해… 이대로 가면 모바일은행 수준


    - 크라우드 펀딩
    투자 한도액에 제한, 펀딩 성공률 갈수록 떨어져


    - 잘못 붙힌 개혁 이름표
    관치금융 철폐 등 큰 개혁 않고 민간에 맡기면 될 것에 손대


    공공·노동·교육 개혁과 함께 박근혜 정부가 4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꼽아 온 금융 개혁이 요란했던 구호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시장 수요 예측에 실패한 채 헛발질한 정책이 있는가 하면, 방향은 잘 잡아 놓고 '규제 본능'을 버리지 못해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가만히 놔두면 민간 회사들이 알아서 잘할 것을 괜히 나서 실적 올리겠다고 쥐어 짜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현 정부의 금융 정책 또한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이명박 정부의 '서민금융'과 같이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규제 본능'에 말라가는 금융 개혁


    이번 정부가 내세운 대표적인 금융 개혁 과제는 인터넷 전문은행이다. 사실 인터넷 전문은행은 이명박 정부 공약에도 포함돼 있던 해묵은 과제다. 오프라인 점포 없이 온라인으로만 굴러가는 은행의 문을 열어주면, 이들이 영업 비용을 아낀 돈으로 저금리 대출, 고금리 예금을 공급하는 새로운 금융 모델을 만들 것으로 기대됐다. 선진국에선 이미 20여년 전에 시작된 사업 모델이다.


    KT 등이 주축이 된 'K뱅크'와 카카오가 주축인 '카카오뱅크'는 당초 지난해 인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올해로 미뤄졌다. 연내엔 인가를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시중은행들이 인터넷 은행의 비즈니스 영역에서 경쟁 중이어서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막상 영업을 시작해도 현재 널려 있는 시중은행 모바일뱅킹 수준의 서비스를 하는 데 그칠 것으로 우려된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를 제한(은산분리)한 은행법 때문이다. 인터넷 은행의 핵심 주주 격인 IT 회사들이 현재의 지분율을 넘어서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수 없다. 현재 KT와 카카오의 지분율은 각각 8%와 10%뿐이다. '10%(전체 지분)·4%(의결권 지분)룰'을 깨지 않으면 혁신적인 인터넷전문은행 탄생은 난망한 셈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주주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규제 개혁에 손을 쓰지 않은 탓에 이대로라면 '인터넷 전문은행'이 아닌 흔한 '모바일은행' 두 개가 추가되는 수준일 것"이라며 "은행법 개정이 어려우면 현재 야당이 발의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라도 속히 통과시켜 제대로 된 투자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당이 발의한 특례법은 카카오 등 산업자본의 인터넷 전문은행 지분을 최고 34%까지 허용하는 내용이다. 다수의 투자자가 십시일반으로 창업 기업에 투자하는 크라우드 펀딩은 올 1월부터 허용됐는데 10월 말까지 월평균 10개 업체가 기업당 평균 1억6000만원을 모집하는 데 그쳤다. 이 정도 돈으로는 사업을 제대로 꾸리는 게 어렵다. 그나마 펀딩 성공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같은 기업에 한 번에 200만원까지, 1년에 500만원까지밖에 투자할 수 없다는 규제 철벽을 쳤기 때문이다.


    당국의 규제 본능은 개인 간(P2P) 대출에서도 튀어나왔다. P2P 대출은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중개 업체에 대출을 신청하면 불특정 다수 투자자가 돈을 빌려주는 금융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초 P2P 일반 투자자는 대출 한 건당 500만원까지 빌려줄 수 있고, 1년에 한 P2P 대출 업체에 1000만원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내 놓았다. 전문가들은 P2P 대출이 발달한 다른 나라에선 투자액을 제한하는 규제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가까운 중국조차 투자 한도를 제한하지 않는다.


    지난 3월 출시된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또한 정부가 금융개혁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가입 요건과 세제 혜택 요건을 까다롭게 한 탓에 가입자 숫자가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ISA 계좌는 5년을 유지해야 순이익 200만~250만원에 대해 비과세해준다. 치솟는 전세금을 메우려 ISA 계좌를 깨기라도 하면, 쥐꼬리만 한 세제 혜택을 포기해야 하는 서민 입장에서 지금 같은 구조의 ISA는 매력이 없다. 소득 있는 사람이나 농어민 등으로 가입 대상이 제한되다 보니, 주부 등은 가입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ISA의 가입 한도는 연간 2000만원인데, 9월 말 현재 계좌당 평균 가입액이 123만원밖에 안 되는 이유다.


    ◇수요도 별로 없는 억지 금융개혁


    은행 창구에 가지 않고도 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하겠다는 비대면 실명 확인 서비스도 정부가 내세우는 금융개혁 과제 중 하나다. 지금까진 모바일로 펀드를 넣고 송금할 수 있었지만, 이젠 모바일로 계좌까지 틀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금융위원회가 비대면 실명 확인을 통한 계좌 개설을 허용한 뒤, 지난 10월까지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개 은행의 계좌 개설 건수는 평균 4794건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신규 개설계좌의 0.5%밖에 안 된다. 실제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기자도 20여분 진땀을 흘려 간신히 계좌를 만들어야 할 만큼 가입 절차가 복잡했다. 게다가 근처에 은행이 많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굳이 모바일로 계좌를 개설하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다. 은행 관계자는 "모바일로도 계좌까지 틀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라, 거창한 금융 개혁 과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편의점 캐시백 서비스도 실수요가 반영되지 않은 금융 개혁의 전형이다. 편의점에서 체크카드로 물건을 사면서 예금까지 한꺼번에 찾을 수 있게 한 서비스다. 지난달 우리·신한은행이 전국 16개 위드미 점포에서 시작했는데, 처음 5영업일간 인출 건수가 두 은행을 합해 30건 수준이었다. 전국에서 하루 6명 정도만 이용한 셈이다. 이 서비스는 미국·호주 등에서 성행한다. 땅이 넓어 우리나라와 달리 ATM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국민·하나은행은 이 서비스를 이달 중 시작할 예정이다. 은행 관계자는 "정부 시책에 부응하기 위해서 참가하는 쪽에 가깝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관치금융 철폐 등 큰 개혁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시장 자율에 맡기면 더 잘할 수 있는 것들을 개혁 과제로 들고 나온 것 자체가 안타깝다는 의견이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이 하면 더 잘할 핀테크(금융과 정보기술 결합)를 정부가 이끈다고 나선 결과 외국을 따라가는 정도밖에 안 된다"며 "개혁의 이름표를 엉뚱한 곳에 잘못 붙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