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스타트업 투자 1위... 한국선 삼성만 체면치레

    입력 : 2016.11.14 09:17

    [글로벌 대기업들, 벤처캐피털 투자 순위 살펴보니]


    구글, 36개社에 1조7800억원 등 美 IT·미디어 기업이 상위 포진
    日기업들은 핀테크 중심 투자, 獨·佛 등은 제약사들이 주도
    한국은 삼성 외엔 순위 못들어
    인터넷·모바일·헬스케어 등 투자 스타트업은 주로 '미래산업'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인 구글은 벤처투자 전문 자(子)회사인 구글벤처스를 통해 올 상반기에만 36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에 15억5200만달러(약 1조7800억원)를 투자했다. 같은 기간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텔도 30개 스타트업에 5억1800만달러(약 5900억원)나 투자했다.


    구글과 인텔뿐만 아니다. 미국의 스타트업 분석 업체인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기업 벤처캐피털'(CVC)은 총 127억달러(약 14조6050억원)를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구글·인텔·컴캐스트·세일즈포스·시스코 등 실리콘밸리 일대의 IT(정보기술)기업과 미국의 미디어 기업들이 투자 순위에서 상위 5위까지 독차지했다. 반면 한국 대기업으로는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벤처투자가 유일하게 12위에 오르며 체면치레를 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대기업들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스타트업에 투자해 미래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기업들이 가장 활발. 일본도 핀테크 중심으로 투자 확대


    본지가 CB인사이츠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위 56개 대기업 벤처캐피털 중 절반 이상인 29개가 미국 기업이었다. IT기업뿐만 아니라 화이자·존슨앤드존슨(제약), 블룸버그·허스트미디어(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대기업들이 수천만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투자를 단행했다. 미국은 스타트업의 본산(本山)으로 불리는 실리콘밸리 지역은 물론, 중국·유럽 등 다양한 지역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진행했다.



    국가 순위 2위인 일본은 게임업체인 사이버에이전트와 인터넷 기업 야후재팬 등을 비롯해 총 7개 기업이 상위권에 올랐다. 그동안 일본은 스타트업 투자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최근 NFC(근거리무선통신) 기술을 이용한 핀테크(fin-tech·자본과 기술의 합성어)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신용카드사인 크레디트세존, 상업은행인 미쓰이스미모토은행 계열 펀드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독일·스위스·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들은 대형 제약업체들이 스타트업 투자를 주도했다. 독일의 베링거인겔하임, 스위스의 로슈·노바티스 등이 주요 업체이다. 이들은 사물인터넷(IoT)이나 헬스케어·바이오·신약 개발 업체들에 주로 투자를 했다.


    세계에서 가장 잠재력이 큰 국가로 꼽히는 중국과 인도에서도 대기업들의 스타트업 투자가 활발하다. 중국은 세계 1위 PC기업인 레노버와 중국 최대 보험사인 핑안보험이 스타트업 투자를 주도하고 있고, 인도에서는 최대 미디어 기업인 더타임스그룹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반면 한국은 삼성 이외엔 상위권에 오른 기업이 없다. 현대차·한화·GS·SK그룹 등도 점차 스타트업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이지만 세계 상위권 기업과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


    ◇인터넷·헬스케어에 집중 투자


    과연 글로벌 기업들은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할까. 글로벌 기업들이 투자한 스타트업의 면면을 보면 향후 이들이 그리고 있는 미래 산업을 엿볼 수 있다. IT산업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단행한 구글벤처스와 인텔캐피털은 인터넷·모바일 분야에 각각 9억3000만달러(약 1조원), 2억5400만달러(약 2900억원)를 투자했다. 모든 기기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아 이와 관련된 기술을 미리 선점하겠다는 의도다. 헬스케어·바이오, 무인차 기술 스타트업에도 수백만달러 이상의 투자를 단행했다.


    제약업체들은 한우물을 파는 투자 스타일이다. 화이자와 존슨앤드존슨은 각각 5억1300만달러(약 5900억원), 3억1200만달러(약 3600억원)의 투자를 모두 헬스케어 분야에 집중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제약·바이오 분야가 대표적인 미래 산업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후발 주자와의 격차를 더 벌리겠다는 뜻이다. 금융업체 중 가장 활발히 투자를 단행한 피델리티와 중국의 핑안보험은 헬스케어와 인터넷 분야에 집중 투자했다.


    스타트업 육성 기관인 디캠프의 김광현 센터장은 "글로벌 기업들은 수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영하면서 치열한 스타트업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한국 대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미래 기술의 주도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