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부의 바이오 스타트업 둥지... "아이디어만 갖고 오세요"

    입력 : 2016.11.09 09:29

    [바이오 베이의 핵심'미션 베이']


    철도기지·낡은 공장 들어섰던곳 2000년부터 재개발하며 변신
    1400여개 바이오 기업 몰린 바이오베이 핵심지역으로 浮上


    3개 대학이 공동 설립한 'QB3'… 초기 자본 지원·투자처 연결
    50여개 달하는 개방형 연구공간·값비싼 실험장비도 제공


    작년 생명공학 관련 벤처 자금 캘리포니아주에 48억달러 쏟아져
    바이오 기업·유수의 대학 밀집… 공동 연구·투자처 확보에 유리


    지난달 28일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택시로 남쪽으로 15분을 달려 '미션 베이' 지역에 도착했다. 거리는 새로 지은 고층 건물들과 녹지, 예술 작품들이 조화를 이뤄 세련된 느낌을 풍겼다. 중심가엔 2003년 문을 연 UC샌프란시스코(UCSF) 바이오 리서치 분야 캠퍼스를 중심으로 글래드스턴 등 유명 바이오 연구소가 들어서 있었다. 미션 베이는 지난 9월 페이스북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저커버그 부부가 6억달러(약 6800억원)를 기부한 독립연구소 '바이오 허브'가 들어설 자리이기도 하다. 요즘 이곳엔 바이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꿈을 안은 인재들이 몰려들어 활기가 넘친다.


    미션 베이는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철도 기지와 낡은 공장 등이 들어선 그저 그런 지역이었지만, 2000년부터 재개발되면서 지금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바이오 베이(샌프란시스코만 일대의 바이오 산업 클러스터)'의 핵심 지역으로 떠올랐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은 해외엔 '실리콘밸리'의 배후지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미국에선 바이오 스타트업이 활발하게 탄생하는 곳으로 손꼽힌다. 현재 1400여개의 바이오 기업이 활동하고 있는데,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다. 1980년대 실험실 벤처로 시작해 신약 개발에 성공한 제넨텍(Genentech)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이곳과 더불어 미국의 양대 '바이오 허브'로 꼽히는 보스턴 등 매사추세츠 지역이 전통적인 제약회사의 연구·개발 중심인 것과 비교하면, 미션 베이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맨몸으로 와도 좋다"…바이오 벤처 육성 기관 50여곳


    미션 베이의 바이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창업기업 육성기관) 'QB3'에선 60여개 스타트업이 공간을 나눠 쓰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 2000년 UC샌프란시스코와 UC버클리, UC산타크루즈 등 캘리포니아주 3개 대학이 공동으로 설립한 곳으로, 바이오 분야 기초 연구가 상업화로 이어지도록 지원한다.


    각종 바이오 스타트업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션 베이의 모습(위). 이 지역에 있는 스타트업 지원 회사에서 연구원들이 실험을 하고 있다.(아래) /UCSF 홈페이지·김은정 기자


    QB3는 자체 펀드 '미션 베이 캐피털'을 조성해 스타트업에 초기 자본을 대는 것은 물론 투자처를 연결해준다. 때로는 QB3가 직접 스타트업을 만들어 해당 연구 성과에 대한 지분을 갖고, 추후 매각해 그 수익금으로 재투자한다. QB3는 지난 2014년 6억달러(약 68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1억6100만달러(약 183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글래드스턴 연구소는 2004년 미션 베이 지역에 비영리 성격의 바이오 메디컬 연구 건물을 기부채납한 뒤, UCSF 연구원 300여명과 에이즈 치료제 개발 등에 대해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신야 야마나카도 이곳 출신이다.



    바이오 스타트업을 위한 개방형 연구 공간들도 곳곳에 있었다. 바이오 벤처 파이브로젠(FibroGen)의 인큐베이터 스페이스, US 이노베이션 센터, 일루미나 액셀러레이터 등 미션 베이에만 어림잡아 50여개에 이른다. 책상 1개부터 30여평 규모의 독립 공간까지, 각자 형편에 맞춰 빌릴 수 있다. 합성생물학 스타트업 지원 회사 인디바이오(IndieBio)는 고가의 실험 장비를 갖춘 지하 1층 300㎡의 실험실을 유망 스타트업 회사에 4개월씩 제공하고 있다. 프로그램 디렉터 준(여·34)은 "다른 분야에 비해 바이오 쪽은 장비가 비싸 스타트업을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며 "하지만 아이디어만 있으면 맨몸으로도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 목표"라고 했다.


    ◇바이오 '대박' 꿈꾸고 모이는 스타트업


    벤처 육성 공간이 풍부하긴 하지만 인재들이 몰리다 보니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주거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션 베이의 오피스텔은 방 1개짜리 원룸이 가장 싼 게 월 3825달러(약 434만원)이지만, 빈방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바이오 인재들이 몰리는 이유는 최신 정보를 얻기 쉽고 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박'을 터트릴 가능성도 커진다.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포함한 캘리포니아에서 작년 쏟아진 생명공학 관련 벤처 자금은 47억9000만달러로 2위 매사추세츠(23억7000만달러)의 2배가 넘는다.


    미션 베이에서 제약 분야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파비안(38)은 "생활비가 많이 들지만 근처에 유수 대학이 3곳이나 몰려 있어 인재를 쉽게 구할 수 있다"며 "관공서나 벤처 캐피털 회사 등이 모여 있는 다운타운과도 매우 가깝기 때문에 '원 스톱'으로 일할 수 있어 편하다"고 했다. 미션 베이엔 올해 US뉴스가 미국 의학 대학원 랭킹 2위로 선정한 UCSF 바이오 리서치 분야 캠퍼스가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으며,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가 각각 차로 40분, 25분 거리에 있다. UCSF 박사 후 과정(포닥·Post Doctor) 연구자 베르나테(여·33)는 "제넨텍, 엠젠(Amgen) 등과 같은 대형 바이오 회사들도 멀지 않은 곳에 몰려 있어 공동연구나 투자처 확보 기회가 많다는 점도 스타트업들에는 매력적"이라고 했다.


    ◇지방정부, 스타트업에 맞춤형 정보와 네트워킹 제공


    데니스 코나한 샌프란시스코 경제개발센터(SFCED) 대표는 미션 베이의 인기 비결에 대해 "수요자들의 기호를 철저히 반영한 도시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 사례로 "많은 과학 인재가 밤늦게 다니는 올빼미 타입이라 자가용으로 이동하기 좋아한다는 점을 고려해 단지 내에 5층짜리 주차 빌딩을 곳곳에 만들었다"며 웃었다. 사소한 부분들까지 신경 써서 만든 비즈니스·연구 친화형 테마단지란 것이다.


    SFCED는 입주 기업들이 잘 구축된 인프라를 100% 활용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도 한다. 훌륭한 벤처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신생 기업을 벤처 캐피털 회사에 소개하거나 시너지 효과를 낼 회사들을 찾아 매칭해주는 식이다. 바네사 앤서니 SFCED 디렉터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보다 일하기 좋은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션 베이 재개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UCSF는 6억달러를 투입해 미션 베이 남쪽 도그패치(Dogpatch) 지역에 정신건강의학부와 청소년·가족 건강 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19년 완공을 목표로 지난 5월 관련 부지 15만 제곱피트(약 1만4000㎡)도 샀다. 이미 그 주변으로 1만2000여 가구 규모의 오피스텔 공사가 시작됐다. 폐공장 등이 남아 있는 이 지역이 미션 베이의 성공 신화를 이어갈지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