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여리박빙'인데... 人事도 정책도 올스톱

    입력 : 2016.11.08 09:48

    [최순실의 국정 농단]


    공공기관장 등 인선 못해 黨政 정책협의회 중단
    경제법안 통과도 불투명, 예산안 졸속 처리 가능성도
    정부는 보여주기식 회의만…


    정부·여당이 정책 현안을 논의하는 무대인 당정협의회는 매주 한두 차례 열린다. 하지만 지난달 18일을 마지막으로 전혀 열리지 않고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정국을 휩쓸면서 정책 추진의 두 축인 정부와 국회 간 정책 조율 기능이 마비돼 버렸다. 여기에 총리·경제부총리 교체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행정 공백이 본격화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하루라도 국정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일선 정책 현장은 마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 스톱되니 업무도 중단


    먼저 인사(人事)가 올스톱이다. 총리 인선 문제도 매듭을 못 짓고 있는 청와대가 공공기관장 검증 작업을 제때 진행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석탄공사·남동발전·서부발전·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기술 등 5개 에너지 관련 공공기관의 기관장 임기가 9·10월에 끝났지만 아직 후임자를 인선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기술연구원 등 연구기관 5곳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11·12월에만 30명 안팎 공공기관장·상임감사의 임기가 끝날 예정이지만 후임 인선이 제때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한다. 일부 공무원은 총리·경제부총리 인선 이후에 이뤄질 장·차관급 개각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업무에서 손을 놓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정책 추진 기관장이 중도 하차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박명성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이 지난주 사임했다. 임명 5개월 만이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7일 "박 단장이 지난 3일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이튿날 사표가 수리됐다"고 밝혔다. 박 단장은 "제대로 일할 상황이 아니다"며 물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예산안 졸속 처리 우려


    요즘 여야와 정부는 '최순실 예산'이 얼마씩이냐를 놓고 정쟁(政爭)을 벌이는 중이다. 그런데 최순실씨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분야인 문화 예산은 모두 합쳐봐야 내년 예산안 400조7000억원 중 1.77% 에 불과한 7조1000억원이다. 전체를 놓고 보면 작은 부분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셈이다. 따라서 복지·SOC 등 다른 굵직한 분야의 예산심의가 수박 겉핥기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야당이 대폭 깎겠다고 공언한 문화 예산 대신 증액할 분야를 놓고 극심한 이전투구가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정부는 성장률 전망치, 주요 추진 정책 등을 담은 내년 경제정책 방향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가 재임 중인 가운데 임종룡 부총리 내정자가 대기 중인 형국이라 누구의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단 '유일호표'로 경제정책 방향을 만든 다음에 임 내정자가 취임하면 '임종룡표'로 수정하는 궁여지책을 써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이 밖에 규제 프리존 특별법 등 내수 활성화를 담은 법안이나 인터넷은행 설립을 위한 은행법 개정안 등 금융시장 선진화를 위한 법안의 통과가 최순실 사태로 더 어려워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놓고 노사 합의가 안 된 곳이 50여곳에 이르고 있는데, 행정 공백을 틈타 공공기관 노조들이 성과연봉제를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여주기 식 '회의'만 늘어나


    정부 기능의 골격을 유지하는 각종 회의체도 동력(動力)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황교안 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고,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경제관계장관회의 좌장을 맡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퇴임을 앞두고 있어 의욕적으로 업무를 챙길 상황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주재해온 무역투자진흥회의는 11차 회의를 이달 중 열 예정이었지만 언제 개최할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다.


    국정 공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분위기 수습용 회의를 쏟아내고 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는 7일 "사회관계장관회의 개최 횟수를 늘리겠다"고 했다. 사회관계장관회의는 매달 한 차례 열고 있어도 별문제가 없기 때문에 자주 열어봤자 '회의를 위한 회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는 이날 갑자기 '한진해운 합동 TF 회의'를 8일에 열고, 9일에는 거시경제 금융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발표하는 등 회의를 연달아 열겠다고 밝혔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회의라도 자주 열어야 최순실 사태로 의욕을 잃은 일선 공무원들을 끌고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