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코스닥株 외면?... 논란 부른 국민연금 투자법

    입력 : 2016.11.08 09:27

    [대형주 위주 투자… 일각서 중소형주·코스닥 주가 하락 책임론]


    - 올해 바뀐 투자방식
    개별 종목서 특정 지수 따르는 패시브 투자방식으로 바꿔
    1~8월 코스닥서 3615억 순매도


    - 국민연금은 "억울"
    "대형주 따라가는 투자가 대세… 지금까지 벤처에 6000억 투자"


    - 증권가 일각의 우려
    "이사장 바뀔 때마다 논란… 기금운용본부 독립시켜야"


    "국민연금이 중소형주와 코스닥 부진의 원흉이다."


    최근 증권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을 원망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국민연금이 대형주 위주로 투자에 나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중소형주와 코스닥 기업 주가가 1년 내내 하락세를 보인다는 분석이 확산되면서 생긴 일이다.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 시장에서 시가총액에 따라 상장 종목을 대형주·중형주·소형주로 나누는데, 대형주는 시가총액 1위부터 100위, 중형주는 101위부터 300위까지이며, 301위 이하는 소형주로 분류한다. 개인 투자자들은 시가총액 상위권 대형주는 1주당 가격이 비싸 상대적으로 저렴한 소형주·코스닥 주식에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인데, 올해 중소형주와 코스닥 부진으로 손실을 본 사람이 적지 않다.


    논란이 시작된 것은 지난 6월 국민연금이 투자 방식을 개별 종목을 선별해 투자하는 '액티브'(active) 방식에서 특정 지수를 따라 투자하는 '패시브'(passive) 방식으로 바꾸면서다. 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은 이 원칙에 따라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형주에 주로 투자하고 중소형주와 코스닥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연기금과 기관 투자자들도 국민연금을 따라 하는 일이 늘어났고, 중소형주와 코스닥 종목 투자 부진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거듭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시장의 투자 흐름에 따른 것뿐"이라는 취지로 항변하고 있다. 지난 10월 말에는 중소형주를 위주로 총 1조원가량을 투자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히며 논란을 진화하는 중이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와 '최순실 게이트' 등 국내외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장 하락세가 이어지자 논란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이 중소기업 외면하나" 주장도


    국민연금의 투자 방식이 논란이 된 가장 큰 원인은 올해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에서 대형주와 그 밖 종목 간 수익률 편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올 들어 지난 4일까지 유가증권 시장에서 대형주는 주가가 평균 3.41% 오른 반면, 중형주와 소형주는 수익률이 각각 -9.24%, -2.86%로 상대적으로 크게 부진했다. 코스닥 시장은 10.48% 하락했다. 대형주와 비교하면 14% 이상 수익률 격차가 벌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코스닥과 소형주 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이 중소기업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고 거세게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오 의원이 국민연금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1~8월 코스닥 시장에서 3615억원어치를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했다. 특히 올해 1~8월 중 5월 단 한 달만 빼놓고 7개월간 순매도했다. 오 의원은 "중소형주나 코스닥 시장에는 기술력을 갖췄지만 자금이 부족해 성장세가 더딘 기업이 많다"며 "국민연금은 눈앞의 수익률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고려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권가에서도 최근 잇따른 중소형주와 코스닥 주식의 부진에 '수급 불균형'을 꼽는 목소리가 나왔다. 주가를 떠받칠 큰손이 없다는 것이다. NH투자증권 이현주 연구원은 "올해 코스닥과 중소형주의 부진은 기관이 일관되게 주식을 매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코스닥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더해졌다"고 분석했다.


    ◇국민연금 "대형주 따라가는 투자가 시장 대세"


    국민연금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대형주를 따라가는 패시브 투자는 국민연금만의 독특한 전략이 아니라 시장 대세라는 것이다.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지난해 중소형주 위주로 주가가 많이 오르면서 자산운용사들이 당초 계획보다 중소형주 투자를 많이 하는 바람에 이를 바로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을 외면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지난 2002년부터 벤처 투자를 실시해 지난 8월까지 6000억원을 투자했다"며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증시에서는 국민연금이 공공성을 명분으로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중소형주나 코스닥 주식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게 옳으냐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애널리스트는 "국민연금은 성격상 공격적인 투자보다 안정적이면서 꾸준한 수익률을 올려야 하는 게 과제인데, 대형주가 주도하는 시장에서 패시브 투자 대신 중소형주를 골라 투자하기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증시에서는 또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을 바로잡으려면 투자의 중립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증시에 끼치는 영향이 워낙 크다 보니 이사장이나 기금운용본부장이 바뀔 때마다 투자 방식 등을 놓고 같은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 증권사 사장은 "정치적인 논란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켜야 한다"며 "이사장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논란이 반복되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 연금이 위험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