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1위 船社 "출혈경쟁"... 해운 구조조정 비상

    입력 : 2016.11.07 09:24

    [머스크, 3분기 잠정 실적 발표]


    전년 동기보다 영업익 33% 감소 "점유율 위해 돈 더 잃을 각오"
    국내 해운사 실적 더 나빠질 우려
    "해운 업황 개선되지 않으면 현대상선 1년 이상 버티기 힘들어"


    지난 3일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는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3분기 매출액 92억달러(약 11조원), 영업이익은 8억500만달러(약 1조원).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9%, 영업이익은 33% 감소한 참담한 성적표였다. 하지만 머스크의 최고경영자(CEO) 쇠렌 스코우(52)는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당분간 돈을 잃을 각오는 돼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해운시장의 16%를 차지하는 머스크가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운임을 내려 경쟁 해운사에 타격을 주는 '치킨 게임(마주 보고 달리는 자동차처럼 죽기 살기식 경쟁)'을 계속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머스크 CEO의 이날 발언은 현재 진행 중인 우리나라의 해운·조선 산업 구조조정에도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세계 해운 시장의 운임을 사실상 결정하는 머스크가 지금과 같은 '치킨 게임'을 계속하면, 국내 해운사들의 실적이 앞으로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하나 남은 국적 원양 해운선사인 현대상선의 생존도 장담하기 힘들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상선은 지난 상반기에만 40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으며, 현재 남은 자금은 7000억원 수준이다. 한종길 성결대 교수는 "정부가 현대상선에 신규 선박 등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해운 업황이 개선되지 않은 채 이대로 가면 현대상선은 1년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선박 공급 과잉 더 심화… 해운 운임도 지속 하락"


    정부는 1조원 규모의 '한국선박회사'를 통해 현대상선 등에 신규 선박을 제공하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중고 선박은 매입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선박 공급 과잉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런 대책이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작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 있는 찰스턴 항구에 컨테이너를 실은 해운사 머스크의 선박이 정박해 있다. 머스크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3% 감소했다. /블룸버그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보스턴컨설팅(BCG)은 지난 4일 "해운 시장에서 2020년까지 선박 공급 과잉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BCG에 따르면, 현재 해운시장에서 선박 공급은 수요에 비해 7% 정도 많다. 하지만 2020년에는 선박의 공급-수요 차이가 8.2~13.8%로 더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운임 하락 경쟁'에 대비해 대형 1만3000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을 이미 대량 주문했기 때문이다. 해운시장 전문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10대 해운사가 현재 인수 대기 중인 컨테이너선만 176척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발주된 컨테이너선(224척)의 80%에 이르는 물량이다. 하명신 부경대 교수는 "현대상선이 신규 선박을 확보하더라도 보유 선박 규모가 8배나 큰 머스크 같은 해운사와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여기다 운임마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현대상선의 영업이익은 급격히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8년 이후 목표 구조조정 무의미"


    우리 정부는 2018년 이후 업황 회복을 전제로 해운업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구체적인 자구계획안은 2018년까지 버티는 걸 전제로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의 글로벌 해운업 시황을 보면, 이런 전제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우선 세계 해운업이 덩치가 큰 거대 해운사들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머스크의 스코우 CEO는 "앞으로 해운시장은 글로벌 톱3의 점유율이 더욱 심화되고, 10위권 밖 중소 해운사들의 점유율은 더욱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세계 3대 해운사인 머스크와 MSC, CMA-CGM의 시장 점유율 합계는 39%이지만, 내년에는 43%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게 머스크의 자체 분석이다. 세계 7위이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현대상선의 세계 해운업 순위는 13위에 머물러 있다.


    해운 운임의 움직임도 현대상선에 불리하다. 선박 운임은 지난 9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이후 반짝 상승했으나, 장기적으로는 하락세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BCG는 "선박 공급 과잉으로 해운 운임은 2019년까지 연평균 최대 2.6%씩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아시아~미주 노선도 정부의 기대와 달리 현대상선 대신 중국·일본 해운사들의 점유율이 늘고 있다"며 "정부의 해운업 구조조정 계획이 첫 단계부터 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