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 족쇄'에 P2P 시장 들끓다

    입력 : 2016.11.04 09:40

    [금융위 '1개社에 年1000만원' 투자 가이드라인 제시]


    - 1년새 10배로 성장한 P2P 시장
    업계가 희망한 상한액 1억원의 10분의 1로 투자금액 대폭 축소
    제2금융권·대부업계 입김說도


    - 중국에도 없는 규제를…
    업계 "이제 막 자라는 시장을…", 당국 "큰손 몇 명에 의지 안돼"


    "금융 당국이 P2P(peer to peer·개인 간) 대출 지침을 만든다고 했을 때 저희 업계가 '이것만은 안 된다'라고 입을 모아 부탁한 사안은 딱 하나였습니다. 투자 금액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었지요. 그런데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보니 바로 '그 한 가지' 부탁을 밟아버렸더군요."


    금융위원회가 P2P 대출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다음 날인 3일, P2P 대출 중개회사 사장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P2P 대출이란 돈이 필요한 사람이 전문 중개업체를 통해 대출금·사용처 등을 올리면 불특정 다수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금융 서비스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P2P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자 '1년 투자 한도 1개 회사에 1000만원'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2일 발표했는데, 규제가 지나쳐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P2P 시장을 고사시킬 것이란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P2P 업체 사장은 "P2P 시장에 가장 늦게 뛰어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규제 아래 놓이게 됐다. 사업 시작할 때 금융은 규제가 사업에 가장 큰 위험 요소라는 경고를 수도 없이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약 350억원(누적 대출액)이었던 한국 P2P 시장은 1년 사이 10배 수준(10월 약 3300억원)으로 성장했다.


    ◇의견 수렴한다더니…"규제 일방 통보"


    3일 오전 9시, 한국 P2P금융협회 회원사 사장들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 대책회의를 열었다. 금융위는 그동안 여러 차례 '업계 의견을 수렴해' P2P 대출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의견 수렴은커녕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는 목소리가 컸다. 이승행 한국P2P금융협회 회장('미드레이트' 대표)은 "이번 주 안에 금융위에 공식적인 항의 공문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금융위 주재로 열린 P2P 대출 TF(태스크포스) 회의에 다녀온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가 업계 의견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밤새워 취합한 자료를 만들어 제출했는데, 이럴 거면 왜 불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업계가 제시했던 투자 상한액은 '1억원'이었다.



    금융위에 따르면, 대표적인 P2P업체 '8퍼센트'의 경우 평균 투자액이 400만원 정도다. 2.5배를 상한으로 규제하는 것은 과한 편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또 1개 업체에 연간 1000만원 한도가 적용되면, 기존 투자 금액을 다른 업체로 분산해서 각 업체에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업계 측 주장은 다르다. P2P 대출 업계 1위인 부동산 P2P 업체 '테라펀딩'의 경우 1인당 평균 투자 금액은 1600만원이고, 전체 투자자의 83%가 1000만원 넘는 돈을 투자한다. 업계 전체를 보면 개인 신용대출은 투자자의 60% 이상, 부동산 관련 P2P 대출은 투자자의 약 80%가 1000만원 이상 투자자다.


    ◇중국에도 없는 투자 제한 규제


    당국은 투자자 보호 차원의 규제라고 주장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반인이 P2P 업체에 돈을 투자하고 싶으면 몇 개의 P2P 업체에 1000만원씩 나눠 투자하면 된다”며 “업계가 투자자 저변을 확대하려 하지 않고, 큰 전주(錢主) 몇 명에 의지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혹시라도 P2P 업체의 부실로 금융 사고가 나면 투자자들의 비난이 금융 당국에 쏟아질 것을 두려워해 미리 싹을 자르는 규제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액 제한이 P2P 대출이 발달한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규제라고 지적한다. 중국에서조차 투자 한도 제한은 두지 않고 있다. 대출받는 사람만 한 업체에서 빌릴 수 있는 돈을 제한(20만위안 이하)해 두었다. 미국은 주(州)별로 소득을 기준으로 한 투자자의 자격 제한만 두고 있다. 예컨대 연소득 7만달러(8000만원) 이상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P2P 대출 업체에 금액 제한 없이 투자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성균관대 법대 고동원 교수는 “기업체에 지분을 투자하는 증권형 P2P 투자의 경우 제도 도입 때부터 투자액 상한을 두었고, 그 결과 산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업계의 의견을 더 수렴해서 관련 규제를 현실적인 선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2P 대출


    '개인이 개인에게(peer to peer·P2P)' 해주는 대출이라는 뜻으로,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중개 업체를 통해 대출을 신청하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가 십시일반 방식으로 돈을 빌려주는 금융이다. '대출형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라고도 불린다. 보통 은행에서 돈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출을 신청하고, 투자자는 은행 예금보다 높은 이자를 받아 수익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