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재단에 돈 준 기업도 줄줄이 수사... 대가성 따라 처벌 가능성

    입력 : 2016.11.01 09:42

    [최순실의 국정 농단]


    70억 왔다갔다한 롯데 이어 추가 출연 논란 SK 임원 소환
    최씨 딸 정유라 지원 의혹 삼성·한화도 우선 조사하기로
    배임·뇌물죄로 기소될 수도… 기업들 "우리도 피해자인데…"


    검찰이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요청으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한 대기업 관계자를 본격적으로 소환하고 있다. 두 재단에 출연한 대기업이 50여 개에 달하다 보니 어지간한 대기업의 대관(對官) 담당 임원이 줄줄이 조사를 받을 전망이다. 최순실씨 국정 농단 사건이 대기업 수사로 번지면서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재계(財界)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검찰, 롯데 이어 SK 참고인 조사


    최순실씨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31일 정현식 당시 K스포츠 사무총장으로부터 80억원을 후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SK그룹 박영춘 전무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정 전 사무총장은 지난 2월 말 서울 서린동 SK그룹 본사를 찾아가 "2020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할 펜싱·테니스·배드민턴 등 비인기 종목 유망주 훈련을 지원해 달라"며 박 전무에게 80억원 후원을 요청했다. SK그룹은 K스포츠에 이미 43억원을 출연한 데다가 후원 사업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후원 제의를 거절했다가 이후 "아무 조건 없이 3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역제의했다.



    검찰은 박 전무를 상대로 K스포츠에서 추가 투자 요청을 받은 경위와 SK가 지난해 10월 설립된 미르와 올해 1월 설립된 K스포츠에 출연한 과정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두 재단 설립 과정에서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기업에 출연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검찰은 이에 앞서 지난 30일 롯데그룹 정책본부 소진세 사장과 이석환 상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다음 날 새벽까지 조사했다. 롯데는 K스포츠로부터 "비인기 종목 육성을 위한 체육 시설 조성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지난 5월 말 70억원을 후원했다가 지난 6월 초 전액을 되돌려 받았다. 검찰은 롯데가 신동빈 회장 등 롯데그룹 주요 경영진에 대한 검찰의 내사가 진행되는 시기에 지원금을 줬다가 압수 수색을 앞둔 시점에 되돌려 받은 이유를 집중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최순실 수사 불똥 어디까지 튀나"


    검찰은 롯데·SK를 시작으로 삼성·한화 등 최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는 대기업 관계자를 우선적으로 소환조사한 뒤 두 재단에 출연한 나머지 대기업 관계자를 차례로 불러 조사할 전망이다. 삼성은 훈련을 이유로 독일에 머물고 있는 승마 국가대표 출신 정씨를 위해 경기마(馬)와 훈련장을 구입해 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삼성 등 대기업들은 "두 재단 출연이나 후원 과정에서 대가성이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대기업들은 "재단 배후에 최순실씨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최씨나 정유라씨를 지원할 이유가 없다"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10대 그룹 관계자는 "우리는 청와대와 전경련으로부터 후원 요청을 받고 돈만 냈을 뿐"이라면서 "우리도 피해자인데 검찰 수사가 어디로 튈지 몰라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일부 기업은 대가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고 본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대기업 고위 관계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재단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는 증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기업들이 '청와대의 요구'를 받고 돈을 걷는다는 점을 알면서 출연금을 냈다면 이 돈은 뇌물 성격으로 봐야 한다는 게 법조계 일각의 분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기업 관계자가 뇌물공여죄 등으로 기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뜻이다.


    두 재단 출연금 모금 창구 역할을 맡은 전경련도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주요 사업에 차질을 빚는 등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31일 부산에서 개최 예정이던 '해양 레저 산업 관련 토론회'는 무기한 연기했고, 내년도 사업 계획 확정도 현재로선 불투명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