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물량, 현대상선이 커버" 정부 구상 출발부터 흔들

    입력 : 2016.10.27 10:17

    [부산항 환적화물 두 회사 모두 감소… 부산항 허브 지위도 위태]


    美·中·日 등 한진과 노선 비슷한 현대상선 활용하려던 계획 차질
    물량 대부분 해외 선사로 간 듯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에 현대상선 가입 여부도 불투명


    지난 9월 1일 채권단이 국내 1위, 세계 7위인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결정하자, 해운업계에선 국내 해운업와 부산항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물량을 흡수하면 한국 해운업 경쟁력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박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50여 일이 지나면서, 정부의 이런 구상이 첫 단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9월 한 달 동안 부산항의 환적 화물〈키워드〉 물동량을 분석한 결과, 한진해운뿐 아니라 현대상선의 환적 화물도 감소하면서 양대 국적 선사가 '동반 추락'하고 있다. 26일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지난 9월 부산항의 환적 화물은 79만2000TEU (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8% 감소했다. 선사별로는 한진해운의 환적 화물이 65.9% 급감했는데, 현대상선 역시 7.6%나 줄었다. 국내 선사 중에선 고려해운 등 중소 선사의 환적 화물만 소폭 증가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환적 화물량 동반 추락


    법정관리로 정상 영업을 못 한 한진해운의 환적 화물 급감은 예견된 것이다. 하지만 양대 국적 선사인 현대상선까지 환적 화물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자, 해운업계에선 '환적 화물 이탈'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환적 화물은 특정 항구에서 화물을 다른 배로 옮겨 싣는 것을 말한다. 애초 정부는 한진해운이 처리하지 못한 환적 화물을 현대상선이 상당 부분 흡수할 것으로 예상했다. 부산항을 중심으로 미주·일본·중국·아시아 등을 오가는 노선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조봉기 선주협회 상무는 "아직 한진해운 물량이 어느 선사로 갔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현대상선까지 감소한 것으로 볼 때 대부분 해외 선사로 간 것으로 추정된다"며 "더구나 부산항 전체의 환적 화물이 감소하면서, 부산항의 '동북아 허브 항구' 지위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9월 환적 화물을 포함해 부산항의 전체 화물 처리량은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했다. 같은 기간 부산항과 '허브항 경쟁'을 벌이는 중국의 광저우항은 14.3% 증가했다. 미국 해운 전문지 JOC는 26일 "광저우를 포함해 상하이, 칭다오, 다롄 등 중국 주요 항만의 9월 화물 처리량이 늘었다"며 "동북아 전체 물동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중국 항만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한진해운·현대상선의 동반 추락과 중국 항만의 성장은 결국 한진해운의 공백을 외국 해운사들이 파고든 결과라고 분석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진해운과 해운 동맹(노선·선박을 공유하는 해운사 연합체)을 결성하고 있는 중국의 코스코(COSCO)와 일본의 K라인, 대만의 양밍 등이 한진해운 물량을 공격적으로 가져가고 있다"며 "이 해운사들은 더 이상 부산항을 거점 항만으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의 2M 가입도 불확실… "한국 해운업에 대한 불신 팽배"


    이런 가운데 현대상선의 세계 최대 해운 동맹 '2M' 가입이 지연되면서, 현대상선이 최종적으로 2M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 7월 세계 1·2위 해운사인 머스크와 MSC로 구성된 2M과 공동 운항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에 대해 JOC 등 외국의 해운 전문지들은 "애초 2M은 아시아~미주 노선 공략을 위해 현대상선을 끌어들이려 했으나, (미주 노선 강자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굳이 현대상선이 필요하지 않게 됐다"며 "현대상선의 2M 가입은 불확실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2M과 선박·노선 공유에 대한 협상을 진행 중이며, 11월 말까지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명신 부경대 교수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국제사회에서 한국 해운업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한국 해운사와 손잡기를 글로벌 해운사들이 꺼리고 있어, 현대상선의 2M 가입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적(換積) 화물


    특정 항구에서 A배에 실려 있던 화물을 B배에 옮겨 실어 내보내는 화물을 말한다. 환적 화물을 많이 처리하는 항구를 '허브 항구'라 한다. 환적 화물은 물건을 내리고 다시 옮겨 실어야 하기 때문에, 하역·선적·물품보관 등과 관련해 많은 부가가치가 창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