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만들고 배 만드는 기업도... 스타트업에 꽂히다

    입력 : 2016.10.25 10:05

    [현대차·포스코·현대重 등 스타트업 투자 붐 "혁신 역량 찾기"]


    당장 사업화하기 어려워도 스타트업 아이디어에 주목
    작년 전체 벤처 투자 2兆 넘어… 재계 3세들 특히 적극 나서


    지난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드림플러스 신사센터'. 2층 구석의 한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전자펜과 동그란 카메라 모양의 기기들을 쌓아두고 한창 회의 중이었다. 아이에스엘코리아라는 이름의 이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은 빔프로젝터와 전자펜을 결합한 스마트 교육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디지털 마케팅 스타트업 모비데이즈 사무실에서는 빽빽하게 들어찬 책상에 노트북·PC를 올려두고 일하는 직원 30여명이 눈에 띄었다.


    지하 3층, 지상 4층 규모의 드림플러스는 한화그룹에서 운영하는 스타트업 육성 센터다. 작년 개관한 이곳에는 IT(정보기술)·전자상거래·핀테크(Fintech) 등의 스타트업 8곳이 입주해 있다. 드림플러스의 홍경표 센터장은 "단순히 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가진 각 분야의 사업 노하우도 전수해준다"고 말했다.


    미래의 구글·우버를 꿈꾸며… - 서울 강남구 논현동 '드림플러스 신사센터' 지하 3층 강당에 모인 디지털 마케팅 스타트업‘모비데이즈’와 개인 간 금융거래업체 '빌리' 직원들. 이곳에는 모비데이즈와 빌리 외에 총 8곳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한화그룹에서 운영하는 드림플러스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이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최근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신성장 동력 확보 및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스타트업 투자·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10대 대기업 그룹이 스타트업 투자와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SK 같은 IT사업 중심 그룹뿐 아니라 한화·현대차·포스코·롯데 등 전통의 대기업들도 최근 1~2년 새 스타트업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갈구하는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기업들, "혁신 역량을 찾아라"


    롯데그룹은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스타트업 육성기관 '롯데엑셀러레이터'를 열었다. 롯데그룹이 300억원을 자본금으로 투자했다. 이곳에는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를 만드는 코노랩스 등 15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롯데는 향후 사업 연관성이 높은 스타트업을 더 발굴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아이디어 마켓플레이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2011년부터 지금까지 102개 회사를 발굴하고, 이 중 41개사에 69억원을 투자했다. 현대중공업도 사회공헌 재단인 '아산나눔재단'을 통해 5년 이상 스타트업에 입주 공간 제공, 해외 진출 지원 등을 하고 있다. 삼성·SK·LG·GS그룹도 사내에 별도 계열사를 두거나 내부 투자팀을 조직해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와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기업의 투자 확대는 국내 벤처 업계에도 큰 힘이 된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대기업 투자를 포함한 작년 신규 벤처 투자 액수는 2조858억원, 건수로는 1045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도 상반기까지 589개 스타트업에 투자금 9488억원이 투입된 상태다.


    재계에서는 대기업들이 사내(社內)에서는 확보하기 어려운 혁신 역량을 외부에서 수혈받기 위해 스타트업 투자를 확대한다고 해석한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루프페이·스마트싱스 등을 인수하면서 인공지능·간편결제·사물인터넷 역량을 키우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8월 국내 자동차 기업으로는 최초로 '커넥티드 카'라는 주제로 30시간 동안 스타트업과 대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행사를 열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당장 사업화하긴 어렵지만 내부 R&D(연구개발) 부서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우려와 기대 동시에 나와


    해외 경험도 많고 구글·우버·에어비앤비 등의 성장을 목격한 일부 재계 3세도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31) 상무는 한화의 스타트업 육성 센터 운영에 정성을 쏟고 있고, LS그룹의 장손인 구본웅(38)씨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벤처캐피털(VC)을 운영 중이다.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아들인 정경선(30)씨는 사회적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스타트업 육성 업체인 루트임팩트를 세웠다.


    물론 '한때 유행'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지금이야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3세들도 의욕을 보이지만 향후 경영 환경이 바뀌면 스타트업 육성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기업과 스타트업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대기업은 벤처캐피털(VC)처럼 수익에 집착하지 않아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 게다가 동남아시아·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에도 네트워크가 탄탄해 해외 진출을 노리는 스타트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포인트 적립 서비스 스타트업 스포카 최재승 대표는 "대기업 투자를 받으면 사업을 확대하는 데 상당한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은 "과거에는 대기업들의 벤처 지원 활동이 사회적 공헌 활동 수준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는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