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신용등급 올랐다"... 가계부채·실업률은 언급 안해

    입력 : 2016.10.25 09:59

    [朴대통령 시정연설]


    朴대통령 시정연설: 경제 분야


    "분배 구조도 개선됐다"며 근거로 내세운 지니계수 지표, 자산 빼고 소득만 측정해 한계
    공무원연금·임금피크제는 성과, 4대 개혁 중 노동 분야엔 침묵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국회 시정연설의 첫머리를 경제 분야 성과를 보여주는 데 할애했다. 경제 규모가 세계 14위에서 11위로 올라섰고, 국가신용등급이 G20(주요 20개국) 중 5위로 해당한다며 수치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이어 공공·금융·교육 부문에서도 개혁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자화자찬식 평가는 주로 경제 규모와 같은 외형에 집중돼 있었다. 가계부채, 청년실업 등 국민이 생활 속에서 체감하는 경제 이슈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아 균형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규모·국가신용등급은 높은 평가 가능


    박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우리 경제는 국제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작년 경제 규모는 1조3779억달러(약 1561조원)로 세계 11위를 기록했다. 2005년 역대 최고 순위인 10위에 올랐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 15위(2008년)까지 추락했는데, 다시 반등을 이뤄냈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원자재 수출로 먹고사는 호주와 러시아가 국제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순위가 내려가는 바람에 반사이익을 봤다는 지적을 간과할 수 없다.


    예산안 심사 기다리는 유일호 경제부총리 - 유일호(가운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예산안 심사를 위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은 송언석 기재부 제2차관, 오른쪽은 최상목 제1차관. /남강호 기자


    국가신용등급도 박 대통령 설명대로 영국·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사실이다. 무디스·S&P·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모두 우리나라를 중국·일본보다 높은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나라 살림이 건실하기 때문에 얻어낸 성과다. 경제 규모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7.9%(2015년)로서 OECD 회원국 평균치(115%)에 비해 양호하고, 외환보유액이 3777억달러(9월 기준)로 세계 7위에 이를 만큼 대외 건전성이 탄탄하다는 점은 해외에서 박수를 받는다. 다만 국가신용등급은 '빚 갚을 능력'을 평가할 뿐 종합적인 경제 체력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경기 침체 상황에서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 것은 통화·재정정책을 소극적으로 쓴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며 "경제 규모를 내세우기보다는 현재 상황을 반영하는 경제 성장률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분배 구조 개선" 설명에 고개 갸우뚱


    성과로 내세운 근거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대목도 여럿 있었다. 박 대통령은 "지니계수를 비롯한 여러 지표에서 분배 구조의 개선이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니계수는 소득으로만 불평등 정도를 측정하기 때문에 원래 가진 돈(자산)은 배제된 지수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금수저'라는 유행어에서 볼 수 있듯 물려받은 자산의 위력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최근의 사회적 논란은 지니계수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자유학기제, 일·학습 병행제 확산 등 교육 개혁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학 구조조정이나 사교육 시장 축소처럼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큰 숙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공공부문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시작으로 임금피크제, 성과 연봉제를 도입했다"는 박 대통령의 설명처럼 가시적 성과가 있는 부분으로 꼽힌다. 하지만 기관장 '낙하산' 인사와 같은 고질적 병폐는 여전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순환출자 해소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순환출자가 지배력 유지에 핵심 역할을 하는 대기업은 3개 정도에 그친다"고 말했다.


    ◇가계부채·실업률 증가는 언급 안 해


    시정연설을 지켜본 전문가 중에서는 "정부에 불리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실업자 증가, 가계부채 급증, 내수 침체 등 일상생활에서 국민이 느끼는 고충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는 것이다.


    우선 박 대통령은 공공·교육·금융 부문의 성과만 설명한 채 현 정부가 내세운 4대 부문 개혁 중 가장 시급한 노동 분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해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 개혁안은 가시적인 성과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올 연말 13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계부채와 9월 9.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청년실업률을 해소하기 위한 비전을 엿볼 수도 없었다. 조선·해운·철강·석유화학 등 산업계 구조조정이 큰 화두로 제시돼 있지만 비켜갔다. 이 외에도 박 대통령은 ▲수출 감소 ▲부동산 급등 ▲내수 침체 등도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회 시정연설의 특성상 성적이 나쁜 분야까지 이야기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박 대통령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경제 여건이 나쁘지 않다는 정부 입장을 전달하려 애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