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국채 금리 1%대... 장기 디플레 예고편?

    입력 : 2016.10.20 09:29

    [50년물 국채 금리 1.574% 왜?]


    재정 건전성 좋아서일 수 있지만 미래 성장률·물가 상승률 반영
    그만큼 장기 전망 어둡다는 뜻
    이탈리아·프랑스 등과 비교해도 한국 국채 금리가 가장 낮아
    새로 적용될 국제회계기준 따라 장기자산 더 많이 확보해야 하는
    보험사 수요 몰려 낮아진 측면도


    은행이 어떤 사람에게 50년 뒤에 갚으라며 연 1%대 금리 조건에 돈을 빌려준다면, 누구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돈을 빌리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난 11일 정부는 50년 후에 만기가 찾아오는 국채(國債)를 1조1000억원어치 발행했다. 만기는 2066년 9월 10일, 금리는 1.574%다. 아무리 저(低)금리 상황이라지만, 50년짜리 빚치고는 꽤 낮은 금리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정부의 높아진 대외 신인도와 우수한 재정 건전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꼭 좋게만 볼 일은 아니다. 1.574%라는 낮은 금리가 장기 디플레이션(저성장 속에 물가도 오르지 않는 경기침체)의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의 장기 성장 어둡다"는 뜻


    한 증권사 사장은 "금리 1.574%가 도대체 말이 되느냐"며 "모든 경제 주체가 앞으로 우리나라가 저(低)성장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왜 그럴까. 일반적으로 국채 발행 금리는 미래의 경제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다. 이 때문에 선진국보다 경제가 커질 가능성이 높은 신흥국의 국채 금리는 상대적으로 높다. 그런데 올해 50년 국채를 발행한 나라 중 이탈리아가 2.85%의 금리로 발행했고, 프랑스(1.75%)·스페인(3.45%)·벨기에(2.15%)가 50년물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국채 금리가 가장 낮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채 금리가 1.5%라는 것은 향후 50년 동안 기대 수익률이 평균 1.5%에 불과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안정적으로 연 1.5% 정도의 수익을 내 줄 투자처가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드물다고 전망하기 때문에 낮은 금리의 국채라도 수요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60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1.0%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돼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올해 50년 국채를 발행한 프랑스(1.4%), 스페인(1.4%), 벨기에(2.0%), 이탈리아(1.5%)보다 한국의 2060년 성장률이 처진다. 국가의 성장 가능성이 떨어지면 장기 국채 금리가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번에 발행된 50년 국채 금리는 10년 만기 국채금리(1.534%)와 0.04%포인트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10년을 빌리나 50년을 빌리나 거의 같은 금리다. 일반적으로 채권 만기가 길면 길수록 채권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할 위험률이 커져 금리가 높아진다. 그래야 채권이 팔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 채권과 단기 채권의 수익률이 거의 비슷하거나, 아예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낮은 경우도 생긴다. 장기적으로 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거나, 앞으로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희박할 때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10년 국채와 50년 국채의 금리가 거의 붙었다는 것은 한국의 장기적인 경제 침체 가능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사 과수요가 금리 더 끌어내려


    50년물 발행 금리가 예상보다 낮아진 다른 이유도 있다. 국내 보험사들의 과(過)수요 때문이다. 채권도 상품이라서 찾는 이가 많으면 금리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우리 장기 국채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다. 거의 내수(內需)용이다. 정부 관계자는 "외국 투자자들은 환율 리스크 때문에 다른 나라의 장기 국채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행된 50년 채권 1조1000억원 중 1조원가량이 국내 보험사와 연기금에 흘러들어 갔고, 나머지 1000억원가량은 차익을 노리는 국내 채권 딜러 등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장기 국채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보험사는 부채와 자산 비율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종신(終身)보험 가입자들이 죽을 때까지 보험금을 줘야 하는 '부채'를 지고 있다면, 보험사는 그에 걸맞게 오랜 기간 수익이 보장되는 '자산'을 들고 있어야 한다. 2020년부터 보험사에 새로 적용될 국제회계기준은 보험사들이 부채와 자산 비율을 더 확실히 맞추도록 요구한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보험사들이 그동안 장기 자산을 많이 확보해 놓지 못했기 때문에, 장기 국채에 대한 수요가 한꺼번에 몰려 50년 국채 금리가 예상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