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지는 강남 재건축인데... 서민 대출만 옥죄나

    입력 : 2016.10.17 10:42

    [보금자리론 연말까지 사실상 중단… '햄릿'이 된 경제 사령탑]


    - 그냥 두기엔 거품이…
    수도권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 1년으로 원상 복구하거나
    투기 과열지역 지정 여부 검토


    - 섣불리 규제 꺼냈다간…
    수출·생산 모두 바닥친 상황에 건설까지 손대면 경기 급랭 우려
    내년 대선 앞두고 정치권 눈치도


    "환부(患部)가 커지고 있어서 메스를 들이대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정책 당국의 고위 관계자가 16일 펄펄 끓어오르는 기미를 보이는 부동산 시장을 두고 "지금의 활황세가 계속 이어지면 집값을 잡는 규제를 가하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강남의 재건축 시장발(發) 부동산 경기 급등세를 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도 투기과열지역 지정 여부 등의 규제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치솟는 집값을 잡으라는 지적을 받고 "8·25 가계부채 대책의 효과를 보고 나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관계자들은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킬 정책 수단은 많고, 필요한 시점이 되면 꺼낼 것"이라고 말했다.


    ◇투기과열지역 지정 만지작


    부동산 경기가 과열되자 정책 당국자들은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부동산에 돈이 몰리면 소비 여력이 줄어 내수의 발목을 잡는 데다, 가계부채가 크게 늘고 있어 금융 시스템이 일시에 흔들릴 수 있는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주거비 마련에 허리가 휘는 서민층이 정부에 등을 돌리는 '정치적 부담'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래서 슬슬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우선 정부가 지원하는 서민용 주택담보대출인 보금자리론의 신규 공급을 연말까지 중단하기로 했다. 오는 19일부터 보금자리론을 받을 수 있는 주택 가격은 9억원 이하에서 3억원 이하로, 대출 한도는 5억원에서 1억원으로 하향 조정된다. 별도 제한이 없던 소득 요건도 부부 합산 연 6000만원 이하 가구로 한정된다.



    하지만 보금자리론 중단은 실수요로 집을 사려는 서민들을 주저앉힐 뿐 진원지인 강남 지역 재건축 열기를 가라앉힐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집값 급등 지역의 투기 수요를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현재 6개월인 수도권의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을 1년으로 원상복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기재부나 국토부는 구체적인 액션에 들어가려면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부가 곧바로 행동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섣불리 손을 댔다가 전체 경기 흐름이 끊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수출·생산·투자 지표가 바닥을 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건설·부동산 업종이 끌고나가는 형국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경제 성장에서 건설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51.5%에 달해 1993년 4분기 이후 2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비중이 2002~2014년 사이에는 평균 5.3%에 불과했다. 건설 투자라는 단발 엔진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한국은행도 같은 의견이다. 한은은 올해 1분기와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이 각각 2.8%, 3.3%였는데, 건설 투자를 제외하면 모두 1.6%씩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땅 파고 건물 짓는 활동 없이는 2%대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을 규제하는 방안을 꺼냈다가 경기가 급랭하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게 당국자들의 고민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경제 성장률이 정부 성적표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인데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그걸 깎아내리는 정책을 쓰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지역별 편차 커 2006년과 상황 달라


    정부를 더 고민스럽게 만드는 대목은 지역별로 온도 차가 커서 적절한 대응 방안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부동산 열기가 최고조에 올랐던 2006년에는 전국적으로 오름세를 보였지만 최근에는 활황을 보이는 수도권과 달리 지방에서는 내림세를 보이는 곳도 적지 않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1~9월 주택 가격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전국 평균치가 0.33%다.


    서울은 1.26%, 수도권은 0.75% 올랐지만 지방(비수도권)은 반대로 0.06% 가격이 떨어졌다. 전국 11.6%, 서울 18.9% 오름세를 보여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2006년과는 상황이 다르다. 작년에 3.5%였던 전국 평균 상승률보다도 통계상으로는 한풀 꺾인 양상이다. 이찬우 기재부 차관보는 “강남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일부만 상승 중일 뿐 전체를 보면 과열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물론 강남 재건축 시장 등 일부 과열 지역을 냉각시키는 규제를 서둘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정부 안에서도 나온다. 하지만 그럴 경우 정부가 시장 전반을 위축시키려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지방의 가격 하락세를 부채질할 수도 있다는 반론이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강남 재건축 시장을 억누른다고 해서 그쪽으로 유입될 돈이 지방으로 흘러가지는 않기 때문에 정부가 가볍게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현재의 활황세가 계속되면 정부는 대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성장률을 의식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해"라며 "전매제한 기간을 원상복구하는 등의 억제 수단은 필요한 시점이 되면 얼마든지 꺼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좀 더 지켜본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