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무딘 칼날에... '좀비 기업' 46% 늘었다

    입력 : 2016.10.11 09:50

    [상장기업 10곳 중 3곳,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아]


    - 과감한 퇴출·합병 없다
    우리 주력업종 상당수 기업들 중국 위협 등으로 속속 '좀비'로
    - 민간 자율에만 맡긴다?
    리먼사태 이후에도 지지부진… 구조조정 타이밍 번번이 놓쳐
    더 늦어지면 금융권에 불똥


    지난해 10월부터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국내 5위의 철강사인 동부제철은 지난 3월 2000억원 규모의 채권단 출자전환(빚을 주식으로 바꾸는 것)을 실시했다. 2년 연속 자본금이 잠식돼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동부제철은 부채 비율이 1300%를 웃돌아 금융권에서 더는 돈을 빌릴 수 없다.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09년부터 5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작년에 겨우 780여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빚의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1600여억원)를 낼 형편이 못됐다. 올 상반기도 마찬가지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동부제철은 국내 다른 철강사 등과 합병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며 "채권단이 그나마 구조조정 차원에서 매각하려던 전기로(爐)는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가격이 5000억원대에서 3000억원대까지 떨어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2008년 '리먼 브더더스 사태' 이후 우리 경제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산업 구조조정이다. 정부도 이때부터 한계상황에 이른 조선·해운·건설·철강 등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해 왔으나, 기업 퇴출이나 합병 등 과감한 실행을 못 하는 사이 오히려 '좀비 기업'만 늘어나고 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 6년 새 46% 늘어


    기업정보 제공업체인 NICE평가정보가 영업이익과 금융비용을 공개한 1352개 기업의 상반기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영업이익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이른바 '좀비 기업'이 31%(413개)에 달했다. 영업으로 번 돈으로 이자조차 못 갚는 기업이 10곳 중 3곳이란 의미다. 특히 이 숫자는 2010년 283개에서 6년 사이에 46%(130개)나 늘었다.


    '좀비 기업'은 특히 구조조정 필요성이 오랫동안 제기돼 온 철강·해운·건설 업종에 집중됐다. 해운사 중에는 한진해운(이자보상배율 -3.2)과 현대상선(-3.01), 흥아해운(0.2) 등의 주요 국적선사들이 모두 좀비 기업이었다. 또 철강업계에서는 동부제철 외에 동양철관(-4.39)과 휴스틸(-3.89) 등 상당수 중소 업체들이 좀비 기업이었다. 특히 이들은 올 상반기 재무 상태가 악화되고 있었다. 두산건설과 남광토건 등 건설사들은 3년 연속 좀비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조철 산업연구원 주력산업연구실장은 "우리나라 주력 업종의 상당수 기업이 중국 위협 등으로 인해 좀비 기업 대열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이후 지지부진한 구조조정


    '좀비 기업' 증가는 지지부진한 구조조정의 결과이다. 최근 법정관리행(行) 이후 글로벌 물류대란으로까지 번진 한진해운 사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09년부터 건설·조선·해운 등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그해 1월에는 산업은행 등 채권단을 통해 111개 기업을 대상으로 신용위험을 평가해 부실기업은 퇴출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퇴출된 기업은 단 2개에 그쳤다. 그해 5월에도 9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재무구조 개선 약정까지 체결하며 구조조정을 독려했으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매각한 것 외에는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2011년 이후 이자보상배율이 5년 연속 '1 이하'였으나, 정부의 선제적 구조조정은 없었다.


    정부는 지난 연말에도 해운·조선·석유화학·철강·건설을 5개 취약업종으로 선정하면서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부총리와 관계장관들이 "구조조정은 민간자율에 맡긴다"는 원칙을 천명하자, 시장에서는 "정부가 의지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외국계 컨설팅사에 의뢰해 6개월 이상 검토해 최근 내놓은 해운과 철강의 구조조정 청사진에는 알맹이가 모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창배 박사는 "과감히 살을 도려내는 구조조정이 지연되면 '좀비 기업'의 위기가 향후 금융권으로 전이되면서 경제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자보상배율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은행 이자 등)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누어 구한다. 통상 이자보상배율이 1이 못 될 경우는 좀비 기업으로 분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