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이번엔 삼성 편드는 척 '자기 이익 극대화'

    입력 : 2016.10.07 09:29

    [삼성에 '지배구조 개편' 미끼 던져… 실제 목적은 株價 띄우기]


    - 삼성물산 합병때와는 다른 양상
    작년엔 합병 반대하며 소송전, 이번엔 '빛나는 업적' 칭찬까지
    "분할 회사 나스닥 상장 유도해 막대한 차익 남기려는 속셈"
    - 삼성, 기습 제안에 당혹
    30兆 배당·美상장 요구에 난감
    NYT "이재용 부회장에겐 기회"
    일부선 "단기 주가 올리려는 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측이 삼성전자 분할 및 지주회사 전환과 주주에 대한 배당 확대를 기습 제안하자, 삼성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엘리엇의 노림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지배 구조 개선 작업을 엘리엇이 높게 평가한 것은 일단 삼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나스닥 상장이나 무려 30조원에 달하는 특별 배당 요구는 쉽게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엘리엇 측이 현재는 삼성전자 지분을 고작 0.62%밖에 갖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 외국인 투자자를 대거 끌어들여 삼성 측을 압박하면 삼성으로서도 상당히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삼성물산 합병 때와는 180도로 달라


    엘리엇 측은 지난해 삼성그룹에 대해 노골적인 공격을 시도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상당히 '부드러운' 톤으로 자신의 요구 사항을 밝혔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그룹이 지배 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추진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불법적 합병"이라며 소송전까지 벌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한에서 "새롭게 구성될 리더십을 통해 빛나는 업적을 지속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회사의 지위를 구축하는 데 대단한 역량을 발휘했다" "창업주 가족과 경영진의 공로는 찬사받아 마땅하다"는 등 극찬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그룹 차원의 기업 구조 합리화와 지배권 강화를 위해 삼성전자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삼성전자 지주회사를 삼성그룹의 지주사 격인 삼성물산과 합병해 오너의 지배권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엘리엇은 또 분할한 삼성전자 사업회사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고 30조원(보통주 1주당 24만5000원 규모)의 특별 현금 배당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앞으로도 사업회사가 잉여 현금 흐름의 75%를 주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도 했다. 쉽게 말해 해외 투자자를 위해 삼성의 현금 창고를 화끈하게 풀라는 것이다.


    엘리엇의 이번 제안을 놓고 시장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기업 구조 합리화와 주주 가치 상승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진짜 속셈은 분할된 사업회사의 나스닥 상장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나스닥 상장은 해외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것"이라며 "삼성에 오너의 경영권을 인정한다는 당근을 던져주고 삼성전자 사업자회사의 미국 증시 상장을 이끌어내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엘리엇의 이번 요구가 삼성전자 주가를 단기에 상승시키기 위한 '쇼'라는 분석도 나온다.


    엘리엇의 제안으로 삼성전자의 지배 구조 개편 작업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엘리엇 요구대로 삼성이 지배 구조 개선에 나서면 증시에서는 상당한 호재이기 때문이다. 현대증권 김동원 연구원은 "엘리엇의 제안에 삼성이 그동안 검토했던 내용이 대부분 포함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론적으로 삼성이 스스로 꺼내기 힘들었던 지주회사 전환의 명분을 세워준 셈"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이재용 부회장에게 좋은 기회일 수 있다"며 "엘리엇의 제안대로 하면 삼성이 많은 돈을 쓰지 않고도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 찔린 제안에 고민에 빠진 삼성


    삼성전자와 삼성그룹 측은 "주주의 제안인 만큼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경계하는 분위기다. 특히 대규모 배당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규모 선행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온 삼성의 성장 동력을 훼손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사업자회사의 나스닥 상장도 삼성 경영권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입김만 키워줄 가능성이 높다.


    삼성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엘리엇의 제안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기 힘든 상황"이라며 "엘리엇의 제안으로 기존에 예정됐던 지배 구조 개편에 대한 로드맵이 조정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엘리엇의 지분이 0.62%에 불과하지만 전체 삼성전자 지분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대대적인 공세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증시 관계자는 "통상 헤지펀드들이 무모하게 싸움을 걸지 않는 점을 감안해 이미 이번 제안에 동조하는 다른 주주를 확보했거나 추가적으로 제2, 제3의 카드를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