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터진 공매도 공시... 개미가 알 때면 '상황 끝'

    입력 : 2016.10.06 10:37

    ['공매도 공시제' 도입 3개월… 제 역할 못하는 까닭은]


    ①3거래일 후 공시 - 기관이 판 쓸어버리고 난 뒤 개인이 공시 볼 수 있어
    ②0.5% 이상 대형 공매도만 공시 - 소규모 공매도는 알 길이 없어
    ③실제 공매도 주체 알 수 없어 -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공매도 대행한 증권사 이름으로 공시


    "1조원 벌어들인다는 기업이 있는데, 상식적으로 이 기업의 주가(株價)가 떨어질 것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말이다. 그런데 그런 비상식적인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주식 장이 출발하자마자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한미약품에 대한 공(空)매도 주문이 5만주 이상 쏟아졌다. 전날 오후 한미약품은 미국 제약사와 1조원 이상의 수출 계약을 했다고 밝혔었다. 개인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 터진 오랜만의 호재(好材)에 반색하던 중인데, 상당수 기관 투자자들은 '주가가 내린다'에 돈을 건 것이다.


    하지만 기관 투자자들의 베팅은 적중했다. 이날 오전 9시 28분 한미약품은 '독일 제약사와의 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公示)했고, 한미약품 주가는 하루 동안 18% 미끄러졌다. 주식종목 인터넷 토론방에서는 기관 투자자들의 한미약품 공매도 타이밍을 의심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원성이 가득하다.


    ◇있으나 마나 한 공매도 공시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사용하는 투자법이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에 나설 수 없다. 개인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기관 투자자에게 돈·정보·순발력 등 모든 면에서 밀리는 개인 투자자들은 공매도에 부정적이다. 이 때문에 도입된 것이 공매도 공시제도다. 개별 주식에 대한 공매도 잔액 비율(상장주식 중 공매도 잔액 수량)이 0.5% 이상이 되면, 그 내용을 공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6월 30일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투자자에게 정보를 주고, 불공정거래 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매도 공시 제도는 투기적 공매도를 막는 효과가 없고,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공시가 유명무실한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일반 투자자들은 공매도 거래 3거래일 이후에야 공시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0일 한미약품 주식을 공매도한 기관 투자자가 누구인지 당장은 물론 하루, 이틀이 지나도 알 방법이 없다. 영업일 기준으로 3일이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기관들이 판을 다 쓸어버리고 난 뒤에야 그나마 공시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끼리는 알음알음으로 '누가 공매도를 한다더라'는 소문이 퍼져 공매도에 합세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개인 투자자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번에도 증권사들의 네트워크가 한미약품 공매도 규모를 키운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전체 주식 중 0.5% 이상 공매도할 경우만 공시하는 것도 문제다. 개인 투자자가 소규모 공매도를 알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공매도 당사자가 아닌 공매를 대행해 주는 증권사 이름으로 공시한다는 점도 공매도 공시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공매도 당사자일 경우가 많은데, 정작 공시는 공매도를 중개한 증권사 이름으로 내는 것이다.


    공시제가 시작된 지난 3개월 동안 모건스탠리(55.5%), 메릴린치(10.4%), 골드만삭스(8.2%) 등 외국계 증권사가 공매도 대부분을 중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증권사는 2.8%에 불과하다.


    ◇ "실제 공매도 주체 공개돼야"


    전문가들은 공매도가 주가 거품을 제어하는 측면이 있고, 하락장에서 증시에 자금을 공급하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또 한국만 공매도를 규제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을 가져온다는 현실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실장은 "공매도를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개인 투자자들도 공매도 거래에 나설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공매도를 한 주체를 공시하게 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창호 '공매도 제도개선 모임' 대표는 "공시를 위반하면 내는 벌금 5000만원도 한 번 공매도로 수십억원 이익을 챙기는 기관 입장에선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공시를 위반하면 영업 허가를 취소하는 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매도(空賣渡)


    말 그대로 빈손으로 주식을 매도하는 것을 말한다. 주식을 일시적으로 빌려 주식 매도 주문을 내고, 거래가 성사되면 주식을 구해 갚는 방식이다. 주가가 비쌀 때 공매도 주문을 내고, 주가가 떨어졌을 때 갚아야 이익을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