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도, 비싸도 고민... 스마트폰 출고가 딜레마

    입력 : 2016.09.23 09:38

    제조 원가는 30만원 안팎… 마케팅·인건비 등이 절반 차지


    - 가격 너무 세게 부르면
    1차 구매자 통신업체들 외면 땐 제조사가 재고 떠안아야 할 판
    - 출고가 1만원만 낮춰도
    모델별로 수천만 대씩 판매… 제조사 매출·영업이익률 하락


    LG전자는 최신 스마트폰 'V20'의 출고가 공개를 앞두고 크게 고심했다. 최근 1년째 적자를 보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부의 상황, 갤럭시노트7과 아이폰7이 각각 '불(배터리 폭발)'과 '물(방수 논란)'로 고전하는 시장, 호의적인 초기 소비자 반응 등 가격 결정에 고려해야 할 변수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스마트폰 사업부는 통신 3사와 논의 끝에 출고가를 89만9800원으로 최종 결정했다. 전작(前作)인 V10보다 10만원 비싼 가격이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대번 '너무 비싸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LG전자는 "첨단 음향 부품과 고급 이어폰을 기본 탑재했고, 제휴 카드를 이용하면 최대 46만원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며 부랴부랴 진화(鎭火)에 나서고 있다. '그냥 몇만 원 싸게 내놓고 더 많이 팔면 되지 않나' 싶지만, 제조사 관계자는 "출고가는 단돈 1만원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속사정이 있다"고 했다. 제조사와 통신업체를 울고 웃게 하는 스마트폰 출고가의 딜레마는 무엇일까.


    ◇제조사와 통신사의 신경전


    출고가는 제조 원가 외에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다. IT(정보기술) 업계에선 80만~90만원대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제조 원가를 30만원 안팎으로 본다. 제조 원가 외에도 광고·프로모션·보조금 등 마케팅비와 연구개발(R&D)비, 인건비, 물류비 등이 출고가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이런 비용을 제외하고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스마트폰 사업에서 16.3%의 영업이익률을 거뒀다. 100만원짜리 제품 한 대를 팔면 16만원을 벌었다는 얘기다.



    출고가는 제조사와 통신업체의 치열한 '신경전'이다. 통상 제품 출시를 2~3주쯤 앞둔 시점부터 제조사와 통신업체는 가격 협의에 들어간다. 제품은 삼성전자·LG전자가 만들지만, 이를 1차적으로 구매해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건 SK텔레콤·KT·LG유플러스와 같은 통신업체들이기 때문이다. 제조사가 '이 정도는 받아야겠습니다'라고 하면 통신업체는 '시장 상황이 안 좋은데 그런 높은 가격에 팔리겠어요?' 하고 일단 맞받아친다. 통신업체로서는 가격이 쌀수록 보조금 규모를 줄일 수 있고, 더 많은 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체들도 막강한 '구매력(buying power)'을 가진 통신사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다. 통신업체들은 모든 제조사의 스마트폰을 취급하기 때문에 제조사보다 객관적으로 시장 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 또 무턱대고 높은 가격을 매겼다가 통신업체들이 외면하면 결국 제조사가 재고(在庫)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제조사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 삼성전자·애플·LG전자 등 메이저 제조사들의 독점력이 강해지면서 갑(甲)인 통신업체와의 협상에서도 오히려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LG 'V20'의 경우도 결국 LG전자가 제시한 가격이 관철됐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제 삼성·LG전자는 전 세계적인 가격 정책을 갖고 움직이는 글로벌 기업인 만큼 국내 통신업체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제한적"이라며 "개별 통신사에서 단독으로 출시하는 중저가 스마트폰 정도만 아직 가격 조정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순위 따라 가격 전략도 달라


    스마트폰 출고가는 한때 100만원을 훌쩍 넘을 만큼 '인플레'가 심했다. 하지만 2014년 10월 보조금 규모를 제한하는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시행되면서 거품이 어느 정도 빠지긴 했다. 당시엔 출고가를 일단 비싸게 매겨 '프리미엄 이미지'를 얻고 뒤로는 보조금을 많이 줘서 실제로는 싸게 파는 전략이 가능했지만, 단통법 이후에는 보조금을 마음대로 주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제조업계에선 소비자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100만원'으로 보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V시리즈를 내면서 79만9700원, 89만9800원 식의 '홈쇼핑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다. 프리미엄 이미지는 지키면서도 출고가의 앞자리가 바뀌면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브랜드 인지도가 더 높은 삼성전자는 80만~90만원대 초중반 등 비교적 자유롭게 가격을 매긴다. 그러나 삼성전자 관계자는 "모델별로 수천만 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하기 때문에 출고가 1만원을 낮추면 매출은 물론 영업이익률까지 달라진다"면서 "삼성도 출고가 1만원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