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영국에도 原電 수출... 한국은 7년째 '제로'

    입력 : 2016.09.22 09:32

    [英 30년만의 원전 건설 사업에 참여… 선진국 공략 본격화]


    자체 개발 원전 '화룽 1호'… 안전성 강화, 수준 한 단계 높여
    영국 진출 위해 70조원 '선물'… 자금력으로 원전 수출 지원
    中, '세계 1위' 원전 대국 목표… 한국은 원전 수출 기로에


    중국 정부의 원자력발전 정책 담당자들은 중추절 연휴 기간인 16일 영국에서 날아 온 소식에 환호했다. 영국 정부가 30년 만에 재개하는 원전(原電) 건설 사업에 중국을 참여시키는 계획을 승인한 것이다. 중국 국영 원전 기업인 중국광핵그룹(CGN)은 영국 남서부 서머싯주 힝클리포인트에 원전 2기를 짓는 프로젝트에 60억파운드(8조7000억원)를 투입한다. 프랑스 전력공사(EDF)와 함께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영국 전체 전력 공급의 7%를 담당하는 초대형 규모다.


    영국 정부의 사업 승인은 중국이 원전 분야에서 선진국 공략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이다. CGN은 EDF와 힝클리포인트 원전 외에도 영국 에식스주 브래드웰과 서퍽 카운티 시즈웰에도 원전을 지을 계획이다. 특히 브래드웰에는 중국이 자체 개발한 원전인 '화룽(華龍) 1호'를 건설한다. 영국 현지 언론들은 "중국이 참여하는 나머지 두 곳의 원전 사업도 영국 정부의 승인이 떨어질 것"이라며 "중국이 영국의 전력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중국의 '원전 굴기(崛起·일어남)'가 시작됐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막강한 자금력, 자국 원전 운영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앞세워 세계 원전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나가고 있다. 원전을 차세대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려던 한국으로서는 강력한 경쟁자를 만난 것이다.


    ◇중국 원전, 선진국에도 진출


    중국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캐나다·러시아 등에서 원전을 도입했다. 1990년대부터 자체 원전을 연구했지만 기술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 미국·프랑스 원전 설계 개념을 바탕으로 자체 추진해온 ACP1000 원전 개발에 성공하면서 '독자 원전'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선을 보인 화룽 1호는 안전성을 대폭 강화하고 부품 자급률을 높여 중국 원자력발전 사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의 국영 원전기업인 광핵그룹이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팡청강(防城港)에 세운 중국형 원전.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막강한 자금력, 자국 원전 운영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앞세워 세계 원전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나가고 있다. /중국 광핵그룹


    중국은 2013년 파키스탄에 ACP1000원전 2기를 처음으로 수출했다. 2014년에는 이집트와 원전 건설 협력에 합의하고 중동 원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지난해에는 아르헨티나와 루마니아에 각각 원전 2기를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올 들어서는 터키 원전 시장 진출이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 2일 터키는 중국과 체결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약'을 비준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손잡고 터키 3호 원전 수주를 노리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세계 1위 원전 대국으로 뛰어오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중국이 2030년까지 110기(基)의 원전을 가동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원전 발전 용량은 현재 미국·프랑스·일본·러시아에 이어 세계 5위 수준이지만 2020년이 되면 2위인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2030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설 전망이다. 심각한 대기오염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자국 내 원전 설치를 늘리고 있다.


    중국의 자금력은 원전 수출을 위한 무기가 되고 있다. 2013년 파키스탄에 원전을 수출할 때 당시 건설비 95억달러의 82%를 장기 저리로 융자해주는 혜택을 제공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10월 영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영국 진출을 위해 약 70조원에 달하는 무역·투자 협정을 '선물'로 줬다.


    ◇한국형 원전은 7년째 수주 '제로'


    한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한국형 원전(APR1400) 4기를 수출했다. 정부는 원전 산업을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한국형 원전은 아랍에미리트 수출 이후 7년째 수주가 한 건도 없다.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을 당시 '스마트 원전' 수출을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건설을 위한 본계약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나마 스마트 원전은 발전 용량이 기존 원전의 10분의 1 규모로, 중국이 밀어붙이는 대형 원전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는 "중국의 전방위적 공세로 한국 원전이 국제 무대에서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며 "한국 원전 산업이 수출 산업으로 도약할 것인지 주저앉을 것인지 갈림길에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의 반(反)원전 여론도 국제 수주전에서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핵연료 공급이나 사용후핵연료 관리처럼 원전 건설국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야 수주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데 우리는 한·미 원자력 협정 등으로 제약이 있다"며 "한국이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 등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