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깎여도 좋으니…" 리콜 끌어낸 삼성 소통의 힘

    입력 : 2016.09.05 09:36

    갤노트7 전량 리콜 뼈아프지만 삼성맨들은 돈보다 신뢰 택했다


    - 직원들 "제발 새 제품으로 교환을"
    "충성 고객은 돈 주고도 못 사… 전량 리콜 실천하지 않겠다면 고객가치 최우선 교육도 말라"
    내부 익명게시판에 글 줄이어
    - 직원들 의견 적극 수용한 경영진
    "매우 부끄럽고 미안하다" 고동진 사장, 실명으로 댓글
    직접 전량 리콜 기자회견 자처… 모두 쉬쉬하던 예전과 달라져


    삼성전자가 전 세계에 판매한 '갤럭시노트7' 250만대 전량(全量)을 조(兆) 단위 손실을 감수하며 새 제품으로 바꿔주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린 배경은 무엇일까.


    제품 폭발 원인이 배터리 불량으로 가닥이 잡힌 8월 말부터 지난 2일 공식 리콜 발표까지 3~4일간 삼성 내부에서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치열한 내부 토론이 전개됐다. 최고 경영진의 결정을 빈틈없이 처리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왔던 삼성에서 직원들을 중심으로 "내 연봉 깎아도 좋으니 제발 고객들에게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라"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는 전례 없는 리콜 결정으로 이어졌다. 사상 첫 대규모 리콜에 뼈 아픈 반성을 해야 한다는 지적 속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이 줄기차게 추진해온 상하 간 소통(疎通)과 조직 문화 혁신 작업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 아니냐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성과급 안 받아도 좋으니 새 제품 교환해주자"


    지난 1일 삼성전자 내부 익명 게시판에는 '노트7 배터리 리콜 사태에 대한 의견'이라는 제목의 글 하나가 올라왔다. 갤럭시노트7의 폭발 원인이 배터리 불량으로 판명 나 삼성이 '배터리 전량 교체'를 검토한다는 방침이 본지 등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였다.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 스마트폰사업부 임원진 사이에서는 "애플은 부품 불량이 발생해도 사과는커녕 '가져오면 바꿔준다'는 식이지 않으냐" "문제 된 제품은 0.1%도 안 되니 사과하고 배터리만 교체해주면 충분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해당 글을 올린 직원은 그러나 "우리 제품을 예약 구매한 충성 고객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며 "당연히 새 제품으로 교환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걸 실천하지 않으면 '고객 가치가 최우선'이란 직원 교육도 하지 말라"고도 주장했다. 이 글은 삼성전자 내부에서 큰 화제가 되며 조회 수가 2만5000회에 육박했다. 삼성전자 국내 전 임직원(9만5000명) 4명 중 1명이 읽은 셈이다.


    이에 동조하는 임직원들의 댓글 100여건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성과급 안 받아도 좋으니 제발 새 제품으로 교환해달라" "단기적으로 손실을 봐도 경영진이 통 큰 결정을 내려 달라" 등 내부 여론이 끓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사업을 책임지는 고동진 무선사업부장(사장)도 여기에 답글을 달았다. '사업부장으로서 이런 문제를 유발해 매우 부끄럽고 미안하다. 여러분이 납득할 수 있게 조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직원들은 2000건에 달하는 추천으로 고 사장을 지지했다.


    이튿날 오후 5시 삼성전자 고동진 사장은 전격적으로 리콜 관련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당초 스마트폰 기술 담당 전무·상무급 임원이 나와 결함 원인을 밝히고 리콜 계획을 발표하려 했지만, 고 사장이 "다른 임원 배석 없이 혼자 기자회견에 나가겠다"고 해 발표자가 바뀌었다.


    회견장에서 고 사장은 "고객 안전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배터리 교체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사내 임직원들의 활발한 토론을 보며 금전 규모와 관계없이 고객 안전과 품질, 고객 만족 차원에서 응대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전 세계에 판매한 250만대를 전부 회수해 새 제품으로 교환하는 파격적인 리콜이 단행됐다.


    ◇달라진 '관리의 삼성'


    갤럭시노트7 폭발 문제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그룹에서도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었다. 1995년 이건희 회장이 당시 불량률이 12%에 육박했던 휴대전화 '애니콜' 15만대를 직원들 앞에서 불태운 '애니콜 화형식' 이후 20여년 만에 맞은 삼성 폰의 품질 위기였다.


    최근 유럽 출장을 다녀온 이재용 부회장도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으로부터 이 같은 사내외 상황을 보고받고 최종적으로 과감한 리콜을 결단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삼성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내부 직원들이 서로 눈치만 보며 '쉬쉬'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번 갤노트7 사태에선 전혀 다른 모습을 봤다는 것이 삼성 내부의 평가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최근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기업 문화 혁신 작업이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한 것 같다"며 "공개적으로 전 임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결국 위기를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자는 데 뜻을 함께할 수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