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우량 자산, 현대상선에 넘겨 합병 추진

    입력 : 2016.09.01 09:51

    [국내1위 해운사 법정관리 이후]


    곳곳서 운항 중단·입항 거부 속출… 대부분 선박 압류될 가능성 커


    수개월동안 수출입 차질 예상
    업계 "운임 2~4배 오를 수도"
    정부, 물량 소화·선원 보호 주력


    3500TEU(1TEU는 6m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인 한진멕시코호는 지난 30일 오후 6시 입항(入港) 예정이던 부산항을 30여㎞ 앞두고 거제도 인근에서 뱃머리를 동남쪽으로 급하게 돌렸다. 한진해운에 한진멕시코호를 빌려준 싱가포르 선주 PIL이 용선(傭船)료 체불을 이유로 부산항 입항 직전 운항 중단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국내 1위 해운선사인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진해운이 운용하는 선박에 대한 가압류, 운항 중단, 입항 거부 등이 속출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31일 서울중앙지법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정부는 국적 선사 경쟁력 유지 차원에서 한진해운의 인력과 우량 자산을 현대상선에 넘겨 두 해운사를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운항 중단, 입항 거부 속출… 선박 모두 압류될 듯


    한진해운이 발 빠르게 법정관리 신청을 한 이유는 선박 압류 사태를 최소화하려는 이유에서다. 법원이 법정관리 개시를 해주면 채무 동결이 이뤄져 일단 채권자는 원칙적으로 압류를 신청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부 해외 용선주는 법정관리 소식이 알려진 30일 곧장 압류와 운항 중단에 나섰다. 독일 선주 리크머스는 한진해운 소유의 5300TEU급 컨테이너선인 한진로마호에 대해 싱가포르 법원에 압류를 신청했다.


    한진해운 선박에 대해 입항 거부 항만도 늘고 있다. 중국 샤먼·싱강, 스페인 발렌시아, 미국 사바나, 캐나다 프린스루퍼트 항만은 한진해운 선박에 대해서는 항만 이용료 등을 현금으로 내지 않으면 입항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한진해운에 통보했다. 한진해운은 100여척의 선박이 세계 80여 개국 370여개 항만에 기항하고 있다.


    31일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 로비에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한진 수호' 모형. 이날 한진해운은 전날 채권단이 추가 지원을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이날 오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법원이 채무동결 결정을 내려줘도 선박 압류를 피할 수 없는 지역도 있다. 한국 파산법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파나마 등은 채무 동결 결정이 나더라도 선박 압류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재우 해양수산부 해운정책과장은 "한진해운 선박 100여척 가운데 85척이 중국 항만에 기항하기 때문에 대부분 선박이 압류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 비상대책반 가동… 현대상선에 자산 매각도 추진


    정부는 이날 해양수산부, 선주협회, 항만공사 등으로 구성한 '해운·항만 대응반' 가동에 들어갔다.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최소 2~3개월 동안 수출입에 큰 차질이 예상되는 만큼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이다.


    억류된 한진로마호 - 31일 싱가포르 인근 해안에 가압류된 것으로 알려진 '한진로마호' 모습. 한진로마호는 한진해운 소속 다른 선박 용선료 체불로 독일 선주사인 리크머스가 가압류를 신청해 현재 억류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정부는 단기 대책으로 수출입 물량 소화, 선원의 신변 보호에 주력할 계획이다. 우선 운항이 중단되는 한진해운 단독 노선 4개 중 2개 노선(미주 1, 유럽 1)엔 현대상선의 배를 투입하기로 했다. 또 부산항의 환적 물량 급감을 막기 위해 부산항을 이용하는 글로벌 해운사에 환적 비용을 할인해주는 방침도 세웠다. 국내 해운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인력, 글로벌 네트워크, 선박, 항만 터미널 등 우량 자산을 인수해 합병하는 방식도 추진하기로 했다.


    ◇수출입업체 비상… 운송 예약 취소하고 대체 선사 물색


    국내 수출입 업체에도 불똥이 떨어졌다. 특히 부피가 큰 가전제품을 선박으로 수출하는 전자업계는 한진해운에 운송을 맡기려던 수출 물량을 다른 해운사로 돌리기 위해 대체 선사 물색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현재 가전제품 수출 물량의 20% 안팎, LG전자는 가전제품 북미 수출 물량의 20%를 한진해운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스마트폰은 주로 항공편으로 수출한다. LG전자 관계자는 "대체 선사를 찾는 한편 운송 중인 화물이 선박 압류나 운항 중단에 따라 운송 지연될 경우에 대비한 대책 마련에도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입업체는 화물 운송 운임이 급등할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한 수출입업체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퇴출되면 운임이 미주 지역은 2배, 유럽 지역은 4배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면서 "운임 상승이 가격 경쟁력에 상당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