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해운사 무너지면 造船·항만 연쇄 타격

    입력 : 2016.08.19 09:53

    [한진해운 법정관리 임박]


    법정관리 땐 해운동맹서 퇴출
    협업하던 외국의 대형 선사, 한국 항만 대신 中·日로 갈수도


    국내 수출입 기업 물류비 상승
    국적해운사, 유사시 전략물자 수송… 국가 안보 측면에도 악영향 우려


    한진해운 회생을 둘러싸고 채권단과 한진그룹의 협상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채권단은 한진그룹에 이번 주까지 추가 자구안을 제출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최소 70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진그룹은 "경영권과 지분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4000억원 이상 추가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그룹 전체의 경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내달 4일 한진해운의 조건부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종료 때까지 양측이 극적인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불가피하다. 재계에선 한진해운 법정관리가 불러올 경제적 타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모기업인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이 1000%를 넘은 상황에서, 한진그룹에 추가적인 자금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가면, 그동안 협업을 하던 외국의 대형 선사들도 국내 항만을 외면하고 일본·중국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엔 국내 수출입 기업의 물류비용도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박압류·계약해지 등 '해운 대란'… 국내 기업 물류비용도 증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해운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 해외 선주 등 채권자들은 채권 회수를 위해 항만에 들어오는 한진해운의 선박을 압류할 가능성이 크다. 화주들은 즉각 운송 계약을 해지하고 화물을 거두어들인다. 이런 과정이 수개월 동안 이어진다. 한진해운과 거래하던 상당수 화주는 외국 해운사로 넘어갈 수 있다. 하명신 부경대 교수는 "일반 기업들은 법정관리를 통해 회생할 수도 있지만, 해운사들은 법정관리로 가는 순간 해운업의 특성 때문에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진해운과 해운동맹을 맺었던 외국 해운사들이 향후 국내 항만 대신 일본·중국 등으로 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굳이 국내 항만을 이용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 항만과 물류 산업의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다. 선주협회는 양대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현대상선이 모두 청산될 경우를 가정해, 해운·항만·무역업에서만 166억3000만달러(약 18조원)의 산업적 손실을 추정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안보 측면에서도 타격이 크다. 국적 해운사는 전쟁 등 유사시에 전략 물자를 나르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제4의 군(軍)'으로 불린다. 선주협회 관계자는 "국적 해운사가 파산하면, 국가 신인도 역시 큰 타격을 입는다"며 "국내 조선업에 대한 선박 발주도 줄고, 대규모 실업도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해운사들의 운임이 국적 선사와 비교해 높기 때문에 국내 수출입 기업들로서는 물류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다른 선사가 한진해운 대신하기 쉽지 않아


    정부는 한진해운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화주(貨主)를 현대상선 등 국내 다른 선사들로 돌리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2012년 STX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도 비슷한 조치를 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운업계에선 벌크선(원목·철광석·곡류 등 대량 화물을 나르는 선박) 위주였던 STX팬오션과 한진해운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현대상선의 선박 규모는 한진해운의 70% 수준에 불과하다. 또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물량을 곧장 받아줄 수 있는 여력도 없다. STX팬오션 같은 벌크선은 부정기적(不定期的)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조건만 맞으면 새로운 화주를 찾기 쉽다. 하지만 한진해운 같은 컨테이너 정기(定期) 선사들은 다르다. 컨테이너 선사들은 전 세계 모든 항로를 혼자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해운동맹을 결성해 노선과 선박을 공유하며 하나의 해운사처럼 움직인다. 이 때문에 현대상선 등이 한진해운을 대신하기는 어렵다.


    ◇"해운 영업망 무너지면 회복 어려워"


    정부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글로벌 해운동맹에 가입해 있어, 한진해운이 파산해도 우리의 해운망이 당장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만일 한진해운이 파산하는 경우 자산을 팔아 채무를 청산하고, 팔리지 않은 자산은 현대상선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해운 전문가들은 이런 판단은 해운업의 특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진해운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해외 사옥, 노선 운영권 등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화주들과 맺고 있는 영업망이다. 해운업계에선 수익성이 높은 A급 서비스 노선을 구축하는 데 1조5000억원가량이 드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한진해운은 70여개의 노선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이런 노선과 영업망을 구축하는 데는 최소 10년 이상이 걸린다. 류동근 해양대 교수는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순간 알짜배기 핵심 자산인 영업망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사실상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며 "해운사는 법정관리로 회생이 불가능한 업종이란 점을 채권단 등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