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경제학... 영화관 웃고, 피부관리실 울상

    입력 : 2016.08.17 09:18

    [기록적인 무더위에 지친 소비자들 '실내로… 온라인으로…']


    공연장·대형마트 등 즐겨 찾아… 백화점 바겐세일 매출 급증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들 줄며 간편식품 매출 한겨울보다 많아
    여러 매장 돌아다녀야 하는 여성 정장·종합의류는 타격
    온라인쇼핑 매출 증가율 3배로… 카페 북적이며 빙과류는 덜 팔려


    직장인 이모(32)씨는 이번 광복절 연휴 기간(8월 13~15일) 내내 하루씩 대형마트와 백화점, 아웃렛을 돌았다. 지난달 말까지만 하더라도 연휴에 맞춰서 제주도 2박 3일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으나,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마음을 바꿨다.


    올여름 들어 연일 기록적인 폭염(暴炎)이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8월 국내 소비는 '실내, 온라인'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 시민들이 더위를 피하는 데 생활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최고 더위를 기록한 1994년 여름에도 주요 백화점 바겐세일 매출이 전년보다 50~60%가량 늘어나는 등 올해와 비슷한 소비 패턴을 보였다.


    ◇영화관·마트·공연장, 폭염에 미소


    16일 삼성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여름철 가장 더운 8월 초와 비교적 선선한 7월 초 사이의 지난해·올해 업종별 카드 매출 증가율 변화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이 기간(7월 초→8월 초) 매출 증가율이 눈에 띄게 높은 업종은 영화관·대형마트·공연장 등의 실내 활동 공간이었다. 삼성카드는 8월 초와 7월 초 각각 11일간을 매출 증감 비교 기간으로 정했으며, 올해 8월 초(33.9도)는 지난해 같은 기간(31.9도)보다 평균 최고기온이 2도 높았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화관의 경우 지난해 여름 매출 증가율은 88%였는데 올해 여름은 이 수치의 1.5배가 넘는 134%로 급증했다. 영화관 소비 증가율은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높아졌다. 20대 이하의 경우 증가율 차이가 13%포인트(50%→63%), 30대는 10%포인트(94%→104%)였지만, 50대는 58%포인트(95%→153%), 60대 이상은 107%포인트(76%→183%)나 됐다. 대형마트(10%→15%)와 공연·예술 업종(18%→27%), 브랜드 커피전문점(15%→18%) 등도 올해 여름 매출 증가율이 지난해보다 높은 편이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한 에어컨, 선풍기 등의 가전(家電)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삼성카드가 집계한 올해 7월 초와 8월 초 가전 매출은 167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늘었다. 폭염은 집 안 상차림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소셜커머스업체인 티켓몬스터에 따르면, 지난 1~7일 탕·찌개·국류의 간편식품 매출이 한겨울인 올해 1월보다 23%, 2월보다 101% 늘었다. 가정에서 불을 이용해 요리하려는 사람이 줄어든 결과로 해석된다.


    ◇경제 전체에 끼치는 영향은 중립적


    특이한 점은 폭염 속에서도 올해 여름 캠핑장(119%→131%)과 콘도(132%→139%)의 매출 증가율이 지난해보다 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카드 빅데이터연구소 허재영 박사는 "8월 초는 극성수기여서 콘도와 캠핑장 등의 피서지는 원래 날씨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는다"며 "날은 너무 더운데 과도한 전기 요금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일단 집을 떠나자'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종합의류(-6%→-10%), 여성정장(-24%→-25%) 등 여러 매장을 돌아다녀야 하는 오프라인 업종의 매출은 감소했다. 대신 집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온라인 쇼핑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5%)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14%를 기록했다. 온라인 쇼핑 매출 증가율은 영화관과는 반대로 20~30대(9~13%포인트)가 50~60대 이상(3~8%포인트)보다 평균 2배가량 높았다. 더위 탓에 외부 활동을 최대한 줄이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피부관리 업종(-3%→-8%), 미용실(-2%→-5%), 피부과(9%→4%) 등의 매출도 감소했다.


    올해 폭염이 역대 가장 더웠던 1994년 여름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빙과류 매출이 줄었다는 것이다. 주요 빙과류 업체인 빙그레는 1994년 7월, 20일 만에 주가가 18%가량 뛸 정도로 장사가 잘됐지만, 올해의 경우 빙그레의 지난달 빙과류 매출은 지난해 7월보다 6%가량 하락했다. 요즘에는 빙과류 외에도 카페 등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투자전략팀장은 "폭염은 일반적으로 생산과 소비 활동을 위축시키지만, 더위를 피하는 것과 관련된 가전(家電)과 일부 서비스업종 등에서는 매출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중립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