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나올지... '전기料 폭탄' 공포

    입력 : 2016.08.09 09:17

    [폭염에 에어컨 사용 급증… 누진제로 가정용 요금 최대 11배 차이]


    - 가정용만 누진제 적용
    美는 최대 1.1배, 日은 1.4배 차이
    월 600kWh 사용할때 전기료… 가정집 21만원, 기업은 5만원


    - 한전, 기업엔 싸게 전기 팔아
    한전, 작년에만 11조 넘게 흑자
    영업이익률 삼성전자보다 높아… 전기료 인하는 검토조차 안해


    야당 의원들 전기料 누진제 완화 法개정 추진


    폭염(暴炎)이 이어지면서 전기 사용량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8일 최대 전력 사용량은 오후 3시 8370만㎾까지 치솟으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전력은 "냉방 사용량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냉방 사용이 급증하면서 다음 달 '폭탄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을 가정이 대거 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집에서 보급형 벽걸이형 에어컨(정격 냉방전력 1.1㎾·에너지 효율 1등급·냉방 면적 29.2㎡)을 하루 12시간씩 틀면 월 전기 사용량은 396kWh에 달한다. 보통 에어컨을 틀지 않는 일반 가정의 월평균 전기 사용량은 223kWh이고 요금은 2만7930원이다. 그런데 에어컨을 틀면 월 사용량은 619kWh, 요금은 8배인 23만2680원으로 치솟는다. 이 에어컨을 2대 가지고 있고, 하루 12시간씩 틀면 요금은 20배인 55만2130원으로 폭등한다.


    이 같은 '요금 폭탄'은 현재 전기요금 체계가 사용량이 많아질수록 단위 요금이 최대 11배까지 폭발적으로 비싸지는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월평균 사용량이 100kWh 이하면 kWh당 요금은 60.7원이지만 사용량이 500kWh를 넘으면 kWh당 요금은 11.7배인 709.5원이다. 여름에 에어컨을 장시간 틀거나 겨울에 난방 전열기구를 오래 가동하다가 한 달 전기요금으로 수십만원씩 얻어맞아 '요금 폭탄'을 호소하는 가정이 매년 늘어나는 이유이다.


    ◇가정용만 누진제 적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3년 도입됐다. 당시 논리는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였다. 그 뒤로 누진제 세부 내용은 약간씩 바뀌었으나 "전기를 많이 쓸수록 비싼 요금을 매긴다"는 '징벌'형 구조는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가정 전력 사용량은 점점 증가하는데 누진제를 그대로 두다 보니 뜻하지 않게 '요금 폭탄'을 맞는 가구가 많아진다는 데 있다. 가구당 월평균 전력 사용량은 1998년 163kWh에서 2015년 223kWh로 늘었으며, 평균보다 비싼 요금을 무는 300kWh 이상 사용 가구의 비율은 같은 기간 5.8%에서 29.5%로 증가했다. 지난해 7~9월 전력사용량이 급증,'요금 폭탄'을 맞은 가구는 전국적으로 60만 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누진제는 다른 나라에도 있긴 하지만 우리처럼 격차가 11배나 되는 곳은 없다. 미국은 최고와 최저 요금이 1.1배, 일본은 1.4배, 대만은 2.4배 차이가 날 뿐이다.


    산업용이나 상업용 전기는 누진제가 없다. 아무리 많이 써도 산업용은 kWh당 81원(6~8월 기준)이며 상업용은 105원이다. 만약 일반 가정에서 월 600kWh를 쓰면 전기요금은 21만원 넘게 나오지만 기업은 5만원, 상점은 6만원만 내면 된다. 여름철 냉방을 튼 상태에서 문을 열고 영업하는 상점들이 많은 이유다.


    우리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1278kWh로 OECD 34개국(2012년 기준) 중 하위권인 26위다. OECD 평균(2335kWh)의 절반 정도이며, 미국(4374kWh)과 비교하면 3분의 1, 일본(2253kWh) 절반에 머문다. 반면 산업·상업용을 합치면 소비량 순위는 OECD 국가 중 8위로 올라간다.


    ◇전기 팔아 돈 번 한전 영업이익은 삼성전자보다 높아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로 나오는 주제는 국내 전기를 독점 공급하는 한전이 대기업에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해 과도한 혜택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0년 동안 100대 기업들이 9조원이 넘는 전기료 혜택을 받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전은 지난해 영업이익 11조3000억원, 올 상반기에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45.8% 증가한 6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2분기 영업이익률은 20.4%로 삼성전자(16.2%)보다도 높다. 거래소 상장기업 평균 영업이익률 5%의 4배 이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전이나 전기요금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누진제 완화나 전기 요금 인하를 검토하지 않고있다.


    한전 관계자는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다가 작년과 올해 흑자를 내고 있지만, 신규 사업 투자와 부채 감축 등 돈 들어갈 곳이 많다"고 말했다. 올해 신재생에너지와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등 에너지 신산업에 3조8000억원을 투자하고 차입금 4조20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지난해 여름철에 한해 일시적으로 누진제를 완화해 국민에게 전기요금 부담을 덜어줬지만 올해는 이 시책을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산업부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면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 단전(斷電) 사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서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전체 전기사용량 중 가정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3.6%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부가 자주 논거로 인용하는 2011년 9월 '블랙 아웃(대정전)' 소동은 정부가 전력 수요 예측을 제대로 못 하고 원전(原電) 가동을 일시 중단하면서 벌어진 일이었지, 가정 사용량과는 무관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누진제 완화 개정안 발의


    최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은 전기 요금 누진 단계를 3단계로 간소화하고 누진율을 현행 11.7배에서 2배로 줄이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당도 가정용 전기요금에만 적용되는 6단계 누진세 제도를 개편하는 대안을 마련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윤태연 부연구위원은 "현행 누진제 아래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많은 저소득 가구가 가장 큰 불이익을 받게 되기 때문에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는 "징벌적 전기요금 누진제는 완화하고 취약계층 가구에는 별도 지원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