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까지 가세... 채권형 펀드 107兆 '사상 최대'

    입력 : 2016.08.02 09:36

    [저금리·경기침체에 주식보다 채권 투자]


    몇만원으로 우량채권 분산투자
    '채권형 ETF' 규모도 급증… ETF 시장 점유율 10% 돌파


    금리 하락기에 매력적인 채권, 앞으로 금리 향방이 관건
    고수익 내건 CP 부도 위험도 커


    국내 투자자들이 채권형 펀드에 넣은 돈이 100조원을 돌파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말 30조원에 불과했던 채권형 펀드 투자금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대에서 1%대로 내린 2014~2015년 사이 급격히 불어나, 작년 말 85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현재는 107조원까지 쌓이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주식형 펀드 등 웬만한 투자로는 수익을 낼 수 없는 데다, 앞으로 금리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퍼지면서 채권 투자 붐이 이는 것이다.


    단돈 몇만원만 있으면 주식을 사고팔 듯 실시간으로 우량 채권에 분산 투자할 수 있는 채권형 ETF(상장지수펀드)의 등장은 부자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채권 투자의 대중화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지난달 현재 채권형 ETF가 전체 ETF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도 10%를 돌파, 그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주식보다 채권… 채권투자 대중화 시대


    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국내외 채권에 투자하는 채권형 펀드 설정액(고객이 맡긴 원금)은 106조7547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주식에 투자하는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76조9261억원으로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전성기에 비하면 반 토막 난 수준이다. 또, 채권형 ETF 순자산 규모는 같은 기간 2조5349억원으로 전체 ETF 순자산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세계 주요국 금리가 마이너스 영역까지 내려가고, 앞으로 더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 속에 세계 투자금이 속속 채권으로 몰리고 있다. 독일, 일본 등의 초우량 국채는 사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채권 발행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 마이너스까지 떨어지는(채권 가격 상승)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추가 금리 인하를 저울질하는 상황에서 "지금 이 정도 금리의 채권이라도 사자"는 분위기가 퍼지는 것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같은 갑작스러운 시장 충격을 겪을 때마다 주식보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돈을 지킬 수 있다는 점도 채권의 장점으로 부각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은 채권에 손도 못 댔다. 국채나 우량 회사채의 거래 기본 단위가 100억원에 달해, 기관투자자 등 웬만한 큰손이 아니면 채권 투자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고액 자산가들은 알음알음 사모(私募)로 큰 덩어리의 채권을 나눠 사곤 했지만, 일반 개미 투자자들은 꿈도 못 꾼 게 현실이다.


    하지만 금리가 빠르게 내려가고 일반인들의 투자 기대수익률이 확 낮아지자 자산운용사들이 여러 채권을 한데 묶은 채권형 펀드와 채권형 ETF 등을 속속 내놓기 시작했다. 단돈 1만원으로도 우량 채권에 투자해 금리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주식형에서 탈출한 자금과 대표적 단기 자금인 MMF(머니마켓펀드) 이탈금 등이 채권 상품으로 쏠리는 '풍선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


    ◇채권은 '어둠의 자산'… 금리 향방이 관건


    채권형 ETF 중 시가총액이 약 1조원대로 큰 'KODEX단기채권PLUS' 상품의 경우, 주당 10만원으로 무위험 채권인 국채와 통안채부터 AA- 등급 회사채, A1 등급 기업어음 등 51종목으로 구성된 투자 꾸러미(포트폴리오)를 스마트폰 클릭 한 번에 사고팔 수 있다.


    김용광 삼성자산운용 상품마케팅본부장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기대 수익률이 10%를 넘었기 때문에 잘해야 3~5%대 수익률이 예상되는 채권 투자는 별 인기가 없었는데, 금리가 빠르게 낮아지면서 지금은 3~5% 수익률조차 높게 보이고, 금리가 더 떨어지면 채권 평가 이익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채권 투자가 인기를 끄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형 펀드, ETF 외에도 CP(기업어음)나 ABS(자산유동화증권), 전자단기사채(전단채) 등도 유사 채권 상품으로 꼽힌다. 다만 고수익을 내건 CP 같은 경우 그만큼 부도 위험도 크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앞으로도 채권의 인기가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금융시장에서는 채권을 '어둠의 자산'이라 부르고, 채권투자 전문가들을 '어둠의 자식'이라고 부르곤 한다. 금리가 하락하고 경기가 침체할수록 인기를 끌기 때문이다.


    채권 투자의 매력은 지금 같은 '어둠의 시대'가 언제까지 계속될지가 관건이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여러 나라의 금리가 동시에, 그리고 많이 오르지는 않겠지만, 이 정도 저금리면 내려갈 데까지 간 게 아닌가 하는 심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채권 투자는 지금 이 순간이 절정기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