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폭탄에... 대구 '통신골목' 초토화

    입력 : 2016.08.01 09:13

    [동성로 1길 가보니]


    휴대폰 판매점 100개 빼곡했던 400m 거리선 10여곳만 영업
    한때 점포당 月300대 팔았지만 지금은 50~60대 정도 나가
    "1년 열두달 중 열달은 적자… 현장선 매일 폐업 속출하는데 정치권·정부 대응 너무 느려"


    지난 26일 오후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동성로 1길. 대구의 '통신골목'으로 불리는 이곳에는 휴대폰 판매점 10여곳이 가게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3년 전만 해도 약 400미터(m)인 통신골목 좌우측에는 휴대폰 판매점 약 100개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지만 휴대폰 보조금 제한하는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 이후 휴대폰 판매점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휴대폰 판매점이 떠난 자리에 카페·네일숍·옷가게·패스트푸드점 등이 들어섰고, 몇몇 가게는 턴 빙 채 '임대'라는 글귀가 창문에 걸려 있었다. 'M'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모(42)씨는 "단통법 폭탄 한 방 맞고 유통점이 모두 죽어나가고 있다"며 "휴대폰 판매점 사장들은 모이면 매일 죽겠다는 말만 한다"고 말했다.


    ◇대구의 대표 휴대폰 판매 거리 '통신골목'의 몰락


    2년 전 단통법을 시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동성로 1길은 최고의 휴대폰 유통 상권이었다. 휴대폰 판매가 워낙 잘돼 다른 업종은 감히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B' 판매점 관계자는 "판매점 서너개를 운영하며 직원 수십명을 고용해 매달 순수입으로 수천만원을 버는 사장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대구 동성로 '통신골목'의 한산한 모습. 2년 전 단통법 시행 이후 휴대폰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휴대폰 판매점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대구=김지호 기자


    하지만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이곳을 찾는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보조금 규제로 고급 스마트폰의 실 구매가격이 이전보다 20만~30만원가량 오른 데다 보조금 지급 규모가 똑같아 지면서 굳이 발품을 팔아 이곳까지 찾아올 이유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곳 매장에서는 이전에 월 평균 300대씩 팔렸던 휴대폰이 지금 50~60대 정도 팔린다. 'S' 판매점 사장은 "임대료, 직원 월급, 매장 유지비 등을 다 빼고 나면 열두달 중 열달은 적자가 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통신골목 한편에서 3평짜리 중고폰 가게를 하는 배모(40)씨는 "예전에는 휴대폰 판매점을 했는데 장사가 너무 안 돼 가게 규모를 줄이고 중고폰 판매로 전환했다"며 "판매점 사업을 접으면서 권리금 4000만원을 날렸고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 6000만원 중 2000만원만 겨우 건졌다"고 말했다.


    ◇용산·강변 판매점도 줄줄이 폐업


    서울에 있는 용산 전자상가, 강변테크노마트 등 한때 휴대폰 메카로 불렸던 곳에서 판매점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용산 전자랜드는 지난해 휴대폰 전문 판매 코너를 아예 없앴다. 강변테크노마트에도 빈 매장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단통법 시행 후 통신 3사가 운영하는 직영 대리점이 크게 늘어난 것도 판매점엔 또다른 악재(惡材)다. 한 판매점 사장은 "통신 업체에서 직영하는 대리점은 이전에 주로 유통 판매점에 도매로 휴대폰을 대량 판매했는데 단통법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소매 판매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휴대폰 판매점은 단통법 시행 전 1만2000개에서 지난해 말 1만1000개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직영 대리점은 1100개에서 1487개로 35% 증가했다. 그는 "대형 마트가 들어와 동네 수퍼마켓이 모두 망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전국 휴대폰 판매점의 모임인 한국이동통신판매점협회(KAMSA)는 생존권 보장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집단행동까지 나설 태세다.


    ◇여·야 단통법 개정 움직임


    대표적인 골목 상권인 휴대폰 판매점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도 실무 차원에서 단통법을 조기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야당 위원들이 "청와대 지시로 상한제를 폐지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면서 주춤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단통법이 내수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유통 판매점의 경영난을 가중시킨다는 논란이 거세지면서 정치권에서도 단통법 조기 폐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단통법 시행 후에도 소비자 부담은 줄지 않고 이통사 영업이익만 증가했다"며 보조금 상한제 폐지를 골자로 한 단통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신경민 더민주 의원도 지난달 말 보조금 상한제의 일몰(日沒·사라짐) 기간을 6개월 정도 단축하는 내용을 담은 단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 휴대폰 판매 업주는 "현장에서는 매일 폐업하는 판매점이 속출하는데 정치권과 정부의 대응은 너무 느리고 소극적"이라며 "전국 휴대폰 판매점 기반이 모두 무너지기 전에 정부가 조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통법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지난 2014년 10월부터 시행된 법으로, 통신업체·제조업체가 지급하는 판매 보조금 상한액을 규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보조금 상한액 규제는 '3년 한시 규정'인 만큼 내년 9월까지 유지되다가 효력을 잃게 된다. 하지만 부작용 때문에 중소유통점, 소비자단체 등이 조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