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먹거리 찾아... '수십조원대 M&A' 승부수 던지다

    입력 : 2016.07.22 09:46

    IT 산업 성장 둔화… 업계 首長들, 스타트업 대신 분야별 1위 기업 인수해 신규 시장 개척


    최근 글로벌 IT(정보기술) 업계에서 창업자·최고경영자(CEO)들이 연이어 수십조원짜리 인수합병(M&A)을 단행하며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의 PC업체 델의 마이클 델 회장,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사장,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기업이 있을 경우 돈에 구애받지 않고 과감하게 베팅한다. 이를 통해 정체된 기업의 성장동력을 마련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겠다는 것이다.



    ◇손정의·델·나델라··· 수십조원짜리 승부수


    지난 18일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은 무려 243억파운드(약 36조원)에 영국의 반도체 설계 업체 암(ARM)을 인수했다. M&A의 귀재라고 불리며 숱한 대형 인수를 단행한 손 사장으로서도 이번이 최대 규모였다.


    손 사장이 암을 인수한 이유는 30년 미래 사업으로 꼽았던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을 키우기 위해서다. 세계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프로세서(연산 장치)의 95%가 암의 설계도를 쓴다. 사물인터넷용 센서나 프로세서 기술에서도 암이 상당히 앞서 나간다. 손 사장이 거액에 암을 인수하면서 삼성전자·애플 등 글로벌 IT기업은 자연스럽게 손 사장의 영향력에 들어가는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손정의 사장이 사물인터넷이 주는 중요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찬스였기 때문에 암을 인수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손 사장은 불과 2주 만에 암 인수를 결정했다. 그는 합병 직후 "암의 스튜어트 체임버스 이사회 의장을 2주 전에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환차익도 톡톡히 누렸다. 지난달 말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으로 인해 영국의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고, 일본의 엔화는 급등했다. 암의 가격이 엔화 가치를 기준으로 하면 30% 정도 싸졌다.


    PC업체 델의 마이클 델 회장은 작년 10월 세계 1위 데이터 저장장치 업체인 EMC를 670억달러(약 76조원)에 인수했다. IT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M&A다. 델 회장은 2000년대 초반 온라인 전용 판매 방식을 도입하며 세계 PC업계를 이끌었다. 2004년 그는 경영에만 매달리느라 너무 지쳤다며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긴 채 자선사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스마트폰·태블릿PC 등장 이후 델의 텃밭인 PC 시장이 침체되면서 회사가 흔들리자 2013년 복귀했다. 그는 델을 상장 폐지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후 2년 만에 초대형 M&A로 델의 재기를 알렸다. EMC 인수를 통해 델은 PC업체에서 서버·데이터 저장장치 등 종합 IT업체로 변모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사명(社名)까지 '델 테크놀로지스'로 바꾼다.


    MS의 사티아 나델라 CEO는 262억달러(약 29조원)짜리 베팅을 했다. 지난달 세계 최대의 직장인 기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인 링크트인을 인수한 것이다. 이번 M&A 역시 MS 역사상 최대 규모다. 나델라 CEO는 2014년 취임 당시부터 MS의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전임 CEO인 스티브 발머가 추진해왔던 소프트웨어 중심 사업이 아니라 클라우드(가상 저장공간)·SNS 같은 서비스 기업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시장 변화에 대형 인수로 빠르게 대응


    이들이 '빅 베팅'을 하는 이유는 우선 각 기업의 주력 사업이 정체 상태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초대형 M&A가 늘어나는 것은 현재 정체된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키기 위한 이들 기업의 승부수"라고 보도했다. 지난 10여 년간 IT 시장을 이끌어온 스마트폰·PC 등이 주춤하자, 전혀 다른 분야의 1위 업체를 인수해 체질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소프트뱅크가 암을 인수한 것은 통신 시장에서의 막대한 영향력에 암의 기술력을 더해 사물인터넷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며 "암 역시 소프트뱅크의 막대한 자본을 통해 미래 기술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델은 EMC를 통해 잠재력이 큰 클라우드에 진출하고, EMC는 델의 자금력으로 경쟁사보다 적극적인 연구개발에 나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