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집회 참석땐 고과 더 주는 '황당한 은행'

    입력 : 2016.07.21 09:38

    [신한 등 6개銀 노조가 직접 '노사화합' 평점… 파업 동원 무기로 이용]


    부서·지점별 집단 평가제 악용
    노조, 지점 단위로 인원 할당… 출석 여부 따라 5~100점 가감


    - 금융노조, 9월 총파업 결의
    성과에 따라 최대 40% 급여차… 성과연봉제 도입에 강력 반발


    우리나라 은행원들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대신 노조 활동에 참여하면 고과 평가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이상한 평가 지표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이 직원과 지점에 대해 평가하는 기준인 '핵심성과지표(KPI·Key Performance Indicators)'에 '노사 화합' 항목이 들어 있고, 이 항목에 대한 평가자는 노조다. 이 평가항목에서 점수를 따려면 노조가 주최하는 각종 집회와 행사에 열심히 참여해야 한다.


    은행 노조가 중심인 금융노조는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과연봉제를 두고 '10만 공공/금융노동자 총력 결의대회'를 열었다. 5만5000명(경찰 추산)이 참석한 대규모 집회였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대부분의 은행 노조는 참석 여부에 따라 '노사화합' 항목에 점수를 반영하는 행사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KPI 노사 화합 항목으로 파업 동력을 얻고 있는 셈이다.


    ◇'노사 화합' 평가권을 무기로 삼는 노조


    우리나라 은행원들은 개인별 평가는 따로 안 받고 부서나 지점별로 집단 평가를 받는다. 지점에 대한 평가가 곧 자신의 평가와 일치하게 되는 구조다. 지점에 대한 평가를 하는 제도가 바로 'KPI'이다. 20일 본지가 입수한 은행권 자료에 따르면,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농협·기업 등 시중 6개 은행은 모두 KPI에 '노사화합'이라는 평가지표를 반영하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 로비에서 전국금융산업노조 조합원들이 '해고연봉제 저지, 관치 금융 철폐'를 위한 총파업 1차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노조는 전날 '성과연봉제 반대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실시, 95.7%의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했다. /연합뉴스


    노사화합 항목의 평가자는 노조인데, 노조는 노사화합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노조원들의 집회 참여 여부를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조가 집회를 할 때, 노조는 지점 단위로 집회 참여 인원을 할당하고 전원이 다 오면 가점을 주는 방식을 쓴다. KPI 총점에서 '노사화합' 항목에 부여된 점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0.5~1% 안팎이라 비중이 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저금리 시대에 은행 지점들 사이에 영업 경쟁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최종 평가를 받을 때 불과 몇 점 차이를 두고도 등수가 바뀌는 상황이다. 그래서 은행원들이 체감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진다. 입사 14년 차 모 은행 차장은 "지점 직원들이 열심히 노력해 꽤 좋은 실적을 거둬 좋은 등수를 받을 줄 알았는데 결과는 중간 정도에 그쳤다"면서 "알고 보니 등수가 높은 지점은 실적은 물론이고 직원들이 노조 집회 참여도 잘해 '노사화합'에서도 만점을 받았다고 해 허탈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집회 참여보다 노조 주최 행사나 교육 참여도가 '노사화합' 항목에 주로 반영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사용자가 아니라 노조가 일부 평가항목에서 평가자 역할을 하는 이런 제도는 2000년대 초부터 몇몇 은행에서 시작했는데, 2014년 11월 산별 단체협약으로 '노사화합'을 경영 평가에 반영하도록 하는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됐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노사가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사측이 원하는 내용을 넣기 위해 노조 측의 이 같은 요청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이처럼 황당한 평가 규정이 만들어지게 됐다"면서 "결국 은행이 스스로 노조에 발목을 잡히는 악수(惡手)를 둔 셈"이라고 말했다.


    ◇금융노조, 9월 은행 총파업 예고


    요즘 금융권에선 노사 간 최대 쟁점이 성과연봉제 도입이다. 정부는 성과와 무관하게 고액 연봉을 받는 은행권 급여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은행연합회는 컨설팅회사에 의뢰해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초안에 따르면 시중은행은 같은 직급끼리라도 최대 40%까지 연봉이 차이 나게 된다. 은행권 노조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성과연봉제 도입과 저(低)성과자 퇴출 등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금융노조는 전날 총파업을 포함한 쟁의행위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했고, 투표 참여 노조원의 95.7%가 찬성표를 던졌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오는 9월 23일 1차 총파업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