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휘청이는 수출 떠받치는 '1등 공신' 됐다

    입력 : 2016.07.20 09:40

    [상반기 전체 수출 10% 줄었는데 벤처기업들, 수출 전선서 맹활약]


    매출 1000억원 이상 벤처기업 중 세계시장 점유율 1위 기업 44곳
    R&D 투자율도 대기업의 2배… 세계 최고 기술력으로 정면 승부
    인도·이란 등 신흥시장 적극 공략


    지난 15일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의 산업용 모니터 업체 코텍 공장. 생산 라인에서 직원들이 84인치 대형 모니터 조립에 한창이다. 이 제품들의 행선지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등의 카지노. 코텍은 카지노용 모니터 세계 1위 업체로 전 세계 카지노 기계 둘 중 하나는 이 회사 모니터를 쓴다. 스마트폰처럼 화면에 터치 기능을 탑재하고 곡선형으로 만들어 기존 모니터의 2배 넘는 가격을 받는다. 덕분에 '글로벌 카지노 불황'이라지만 이 업체의 올 6월 수출액은 작년보다 50% 이상 늘었다.


    옆 라인에서는 이 회사의 또 다른 수출 주력 품목인 전자칠판이 쉴 새 없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코텍의 모니터 기술력을 인정한 세계 1위의 캐나다 전자칠판 업체가 전자칠판 주문 제작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전자칠판만 지난해 북미와 유럽 시장에 7200만달러(약 820억원)어치를 수출해 1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고, 올해는 8000만달러 수출이 목표다. 김영달 코텍 대표는 "대기업이 만드는 TV·컴퓨터·휴대폰용 모니터가 아닌 특수 모니터에 집중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서 "올해 2억달러 수출탑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있는 산업용 모니터 제조업체 '코텍' 본사에서 김영달 대표가 직원들과 카지노용 모니터 제품을 확인하고 있다. 카지노용 모니터 세계 1위인 이 회사는 교육용 전자칠판 시장에 뛰어들어 작년 수출 실적이 전년도에 비해 60% 이상 늘었다. /김연정 객원기자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자동차·조선·철강 등 국내 주력 산업의 수출이 18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지만 벤처기업은 나 홀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전체 수출이 1년 전보다 10%가 줄었지만 벤처기업의 수출액은 85억500만달러(약 9조7000억원)로 작년 상반기보다 1% 증가했다.


    ◇틈새시장에서 세계 1위로 승부한다


    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벤처기업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는 해양 위성 안테나 분야 세계 1위 업체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36%. 지난 4월 우주 개발업체 스페이스X가 발사한 로켓을 바다 위 무인선으로 회수할 때 이 회사 안테나를 사용했다. 올해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4년간 80억원을 들여 개발한 초고속 위성통신 안테나가 상용화됐기 때문이다. 성상엽 대표는 "이 분야에서 10개 이상의 세계 최초 제품을 내놓고 시장을 선점했다"며 "세계 1위 크루즈 선사 미국 카니발, 글로벌 에너지 회사 셸, 세계 1위 위성통신 회사 영국의 인마샛이 우리 고객"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95억원인 이 회사 매출의 95%가 수출이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매출 1000억원 이상 벤처 가운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은 44개다. 매출 1000억원 미만인 벤처까지 포함하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국내 기업 가운데 48%가 벤처기업이다.


    ◇R&D 투자 비중은 대기업의 2배


    매출 1000억원 이상 벤처기업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은 2.9%. 중소기업(0.8%)의 3배가 넘고, 대기업(1.4%)의 2배 수준이다. 치과용 영상 진단 장비 업체 레이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방식의 치과 진단용 X레이 기기를 만들어 수출 시장을 뚫고 있다. 엑스선에 LED(발광다이오드)를 입혀 진단 부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 기술도 이 회사가 세계 최초이다. 레이의 매출 대비 R&D 비중은 2014년 8.5%에서 지난해 10.2%로 늘었다. 특허 건수는 국내(4개)보다 해외(12개)에서 받은 게 더 많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수출은 작년보다 30~40%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시장에서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신흥국은 대기업 중심의 수출기지였다. 열악한 인프라 등으로 벤처들은 독자적으로 뚫기가 어려운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신흥국에서 벤처들의 수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허영구 벤처기업협회 정책실장은 “계속된 경기 침체로 내수 시장이 한계에 이르자 벤처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높은 신흥국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기능성 자동제어 밸브 업체 코펙스는 올 초 이란의 한 업체와 150억원 규모의 납품 계약을 맺었다. 작년 연간 총 매출액보다 많은 규모이다. 조계문 상무는 “대기업이라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이란 같은 위험 지역 공략에 머뭇거렸겠지만 우리는 이란 공략이란 목표를 정한뒤 3년 가까이 매달렸다”고 말했다.


    통신장비업체 다산네트웍스는 지난해 11월 폴란드와 베트남에 총 600억원의 통신장비 납품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지난달 인도 시장에도 진출했다. 남민우 회장은 “인도 방갈로르와 베트남 하노이에 2011년부터 R&D 센터를 세우고 현지 직원을 채용해 준비해온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극수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은 “대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유망 벤처기업들의 활약이야말로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