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스스로 규제할 수 있다? 그건 틀린 생각"

    입력 : 2016.07.19 09:37

    [베어 美 연방예보공사 前 의장, 곽범국 韓 예보 사장과 대담]


    "주요국들 경기 부양하려 금리 낮춰 경제 왜곡시키고 자산 거품 만들어… 예금보험기관, 선제적 대응해야"
    "규제 완화가 무조건 善은 아니다, 한국 금융권 성과급 확대 찬성"


    실라 베어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전 의장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위기를 헤쳐 나올 수 있게 한 '소방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세계적 주간지 '타임'은 그녀를 2008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의 리스트에 포함시켰고, '서민의 수호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녀는 금융 위기 당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팀 가이트너 재무장관 등과 함께 월스트리트의 붕괴를 막았다. 지난 2011년 물러나 미국 워싱턴대학의 총장으로 재직 중인 베어 전 의장이 지난 7일 예금보험공사 창립 20주년 기념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해 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과 대담을 가졌다. 그녀는 "주요국들이 경기 부양을 위해 제로(0) 금리, 심지어는 마이너스 금리를 오래 지속하면서 경제를 왜곡시키고, 자산 버블(거품)을 만들고 있다"면서 "각국 정부가 선제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해서는 유럽 경제가 몸살을 앓을 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영국과 유럽연합(Eud)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실라 베어(오른쪽 사진)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전 의장이 예보 15층 회의실에서 곽범국 예보 사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그녀는 주요국들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자산 버블을 만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예금보험공사·장련성 객원기자


    곽범국 사장(이하 곽) "세계 경제는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위기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보나."


    실라 베어 전 의장(이하 베어)"금융 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주요국의 금융 시스템이 많이 견고하고 안전해졌다고 생각한다. 이전보다 스마트한 규제와 감독이 도입되고, 강화되었지만 아직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느슨한 통화 정책으로 인해 최근 상업용 부동산, 금융자산 등은 물론이고 주택에서도 버블의 신호를 볼 수 있다."


    "예금보험기관을 비롯한 금융 당국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베어 "반드시 선제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부실이 발생하면 늦는다. 주택 분야 등에서 대출이 빠르게 늘어난다면 은행에 대한 감독부터 강화해야 한다. 수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없도록 고삐를 죄어야 한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보는가."


    베어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이 증가해 영국과 유럽의 경제 모두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이 어떤 협상을 맺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확실히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긴 시간이 걸릴 것이며 영국과 유럽 모두 경제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반면, 브렉시트가 EU의 관료주의 해소와 경쟁력 개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본다. 영국의 경제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영국과 유럽 모두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금융 위기 회고록을 굉장히 솔직하게 썼다. 미국 금융계 인사들을 실명으로 비판했다. 한국에서라면 논란이 될 것 같다."


    베어 "나는 직설적인 사람이다.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팀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에 대한 나의 견해를 '굉장히 솔직하다'고 표현한 것 같은데, 2008년 당시 그는 씨티은행처럼 큰 은행을 살리는 것이 대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나와 견해가 달랐다. 나는 잘못을 한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 하고 씨티은행과 같이 문제가 많은 은행은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


    "회고록에서 여성 전문가로서 '감정에 치우치지 말라'를 첫째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했는데, 둘째와 셋째는 뭔가."


    베어 "둘째는 '숙제를 해놓아야 한다(Do your homework)'는 것이다. 항상 준비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 분야처럼 아직 남성들이 주도하는 분야에서는 여성들은 항상 더 높은 실적을 요구받는다. 공정하지는 않지만 헤쳐가야 할 현실이다. 셋째는 서로 도우라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지지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라고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여성들 간에 서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는 금융 개혁을 추진하면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규제 완화의 원칙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베어 "한국의 금융 산업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단언할 수 있다. 은행이 스스로를 규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규제 완화는 무조건 선(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금융시장은 현명한(smart) 규제가 있어야 더 잘 돌아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금융권에 성과급을 확대하려고 하는 중이다. 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베어 "성과급 확대에 찬성한다. 실적에 따라 보상을 받아야 한다. 다만, 성과 평가는 유연해야 한다. 내가 2006년 취임했을 때 FDIC는 무조건 3등급으로 평가해야 했다. 상위 25%, 중간 50%, 하위 25%를 할당하도록 했다. 나는 이런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하위 25%를 강제 할당하는 방식은 폐지됐다."


    [실라 베어, 그녀는 누구인가]


    금융위기 때 월街 붕괴 막은 '강철 여인'


    실라 베어(62) 전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이 지난 2012년 펴낸 금융 위기 회고록의 제목은 '정면돌파(Bull by the Horns·황소의 뿔을 잡다)'다. 금융 위기 대처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의 잘잘못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여걸다운 제목이다.


    책임은 나중에 묻고 우선 씨티은행 등 대형 은행을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팀 가이트너 당시 재무장관 등과의 충돌도 불사했다. 그녀는 "예금보험공사가 위기가 터진 후 은행을 위해 (부실을 메워주는) 수표를 발행하기만 한다면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


    2011년 그녀의 퇴임식에는 가이트너 장관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 등 당시 금융권 거물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버냉키 의장은 그녀를 '강철 여인'이라고 불렀다. 미국의 대중적인 백화점인 메이시백화점에서 100달러대 정장을 사서 입을 정도로 서민적이어서 금융 위기 당시 미국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