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엑스포공원이 포켓몬 명당"... '알 부화' 알바도

    입력 : 2016.07.15 09:35

    [한국 상륙한 '포켓몬 고' 열풍… '몬스터 사냥터' 된 속초 가보니]


    공원에 100여명 몰려 포켓몬 사냥… 자전거 대여점 매출 50% 늘어
    美 이용자 7일만에 2100만 돌파… 페북·트위터보다 사용 시간 길어
    피카츄 등 포켓몬 만화 캐릭터 현실에서 경험… 젊은층 열광


    "앗싸, 잡았다!"


    14일 오후 강원도 속초 엑스포공원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Pokemon Go)' 속 가상의 괴물(포켓몬)이 잘 잡히는 '명당'으로 소문이 나면서다. 10대 청소년부터 20~30대 젊은이들까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포켓몬 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50대로 보이는 중년 남성도 있었다.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에서 일부러 온 사람들이었다. 대학생 최예진(21)씨는 "서울에서 아침 9시 40분 버스를 타고 속초에 도착, 지금까지 포켓몬 50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실제로 엑스포공원에서는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그때마다 각종 포켓몬이 나타났다. 많은 이들이 양산이나 선글라스를 쓰고 그늘에 주저앉아 뚫어져라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었고, 이 중 몇몇은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부쩍 많이 눈에 띄었다. 잡은 포켓몬의 '알'을 부화하려면 일정 거리 이상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이용해 시간을 단축하려는 것이다. 자전거 대여업을 하는 유승열(46)씨는 "새벽까지도 게임을 한다면서 공원을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이 많았다"며 "평소보다 매출이 50% 정도 늘었다"고 했다.


    14일 강원도 속초 엑스포광장에는 길을 걸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스마트폰용 게임인 '포켓몬 고'를 하는 사람이다. /속초=김지호 기자

    14일 강원도 속초 엑스포 광장에서 전동휠을 탄 사람이 '알 까드립니다'는 피켓을 단 채 돌아다니고 있다.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 고'에 나오는 알을 부화시키려면 사용자가 1㎞ 이상을 달려야 한다. 속초에서는 게임 사용자 대신 전동휠을 타고 달리며 알을 부화시켜주고 1000원씩 돈을 받는 신종 아르바이트가 등장했다. /속초=김지호 기자


    기자도 직접 '포켓몬 고'를 해봤다. 게임은 양양에 들어설 때부터 실행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녹색 늪지뿐이었던 화면에 '포켓몬이 있다'는 표시가 나타났다. 갑자기 진동이 울리며 잡을 수 있는 포켓몬이 근처에 있다고 나왔다. 그림을 클릭하니 화면이 카메라로 바뀌며 포켓몬 중 하나인 '싸이덕(Psyduck)'이 나타나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화면 속 '몬스터볼'을 터치해 싸이덕을 향해 밀자 공에 맞은 싸이덕이 환하게 빛나며 사라졌다. 한 마리를 잡은 것이다. 그 순간 잡은 포켓몬의 수를 알려주는 '포케덱스(pokedex)'의 숫자가 0에서 1로 바뀌었다. 위치 찾기도 비교적 잘 됐다. 포켓몬들이 결투를 벌이는 '체육관'을 클릭하니 '낙산사' '속초 설악산 표지석' 등과 같은 장소가 사진과 함께 정확하게 떴다.


    ◇ 세계는 지금 포켓몬 고 열풍


    포켓몬 고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아직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지 않은 한국에서도 열광적 반응이다.


    포켓몬 고는 출시 8일 만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터넷 콘텐츠가 됐다. 인터넷조사업체 서베이멍키는 미국 내 포켓몬 고 이용자가 일주일 만에 2100만명을 돌파, 역대 스마트폰 게임 최고 기록을 깼다고 밝혔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11일 포켓몬 고 사용자의 하루 평균 사용 시간은 33분 25초로 소셜네트워킹서비스인 페이스북(22분 8초), 트위터(17분 56초), 인스타그램(15분 15초)보다 훨씬 길었다. 포켓몬 고의 열풍은 '스토리'와 '기술'의 결합이 이끌고 있다. TV 만화와 게임을 통해 익숙한 이야기와 캐릭터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AR)'이란 첨단 기술을 이용, 현실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포켓몬 고의 소재인 '포켓몬스터'는 '피카츄'를 비롯한 700여 개의 몬스터들과 몬스터를 모으고 기르는 '몬스터 트레이너'들의 이야기다. 1996년부터 게임과 TV만화로 등장해 일본과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서 큰 히트를 쳤다. 지금까지 20여 년간 만화와 게임을 통한 누적 수입이 5조엔(54조원)에 육박한다. 중앙대 위정현 교수(경영학)는 "포켓몬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 중 하나"라며 "30대 이하 세대에서 포켓몬스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 속초·양양·고성에서 서비스 가능한 이유는


    현재 국내에서 공식 론칭은 하지 않았지만 강원도 속초·양양·고성 일대에서는 포켓몬 고를 할 수 있다. 게임 개발사인 니앤틱(Nianic)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니앤틱이 가지고 있는 지도 데이터베이스(DB)의 특성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다. 니앤틱은 한국을 총 13개 권역으로 나눴는데, 속초·양양·고성 일대를 포함한 1개 권역을 ‘아시아(AS)’가 아닌 러시아·캐나다·유럽 등이 속한 '북반구(NR)'권으로 잘못 분류했다. 니앤틱은 이르면 이번 주 중에 유럽 전역에 서비스를 시작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유럽과 같은 권역인 속초·고성·양양 일대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니앤틱은 아시아에서는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지만 북미와 유럽권에서는 순차적으로 서비스 론칭을 하고 있다. 한 게임업체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국경과 별개로 지도 데이터를 관리하다 보니 같은 국가지만 서로 권역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 포켓몬,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나


    포켓몬은 실사 화면에 컴퓨터 그래픽을 덧입히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AR)' 기술을 통해 나타난다. 니앤틱은 어떤 포켓몬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등장하는지에 대한 규칙(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주변 환경에 따라 등장하는 포켓몬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강변이나 바닷가에선 거북이를 닮은 '꼬부기'가, 산이나 숲에 가면 토끼를 닮은 '니드런' 포켓몬이 등장한다.


    사용자에 따라서도 서로 다른 포켓몬이 등장한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서로 발견하는 포켓몬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포켓몬을 잡고 캐릭터를 키우면 다른 사용자와 대전(對戰)도 할 수 있다. '체육관'으로 정해져 있는 곳이 대결 장소이다.


    이화여대 이인화 교수(디지털미디어학부)는 "포켓몬 고 열풍은 일본의 콘텐츠 파워와 미국의 기술력(증강현실)이 합쳐지면서 나타난 글로벌한 현상"이라며 "어린 시절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통해 상상했던 포켓몬스터의 세계가 게임을 통해 현실 속에 펼쳐지는 데 열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