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고섬 악몽'... 국내 상장 中國기업 불신 확산

    입력 : 2016.07.13 09:30

    [중국원양자원 거짓공시 후폭풍… 헝셩그룹, 코스닥 상장 연기]


    18개 기업 중 7개사 상장 폐지, 나머지 11곳 시총 2조 육박
    10여개 기업 국내 상장 준비 중 "믿을 수 없다" 투자 심리 악화
    사전검증·사후관리 거의 안돼… 금감원·거래소, 서로 책임 회피


    국내 증시에 상장된 중국계 상장회사인 중국원양자원의 허위 공시가 최근 드러나면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중국 금융당국이 최근 상장을 잘 허용하지 않으면서 올해 들어 우리 증시의 문을 두드리는 중국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중국원양자원 사태'로 중국 기업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분위기가 급격하게 퍼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달 말 코스닥 시장에 상장 예정이던 헝셩그룹은 12일 상장 일정을 연기했다.


    이에 따라 과거 중국 기업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한동안 국내에서 중국 기업의 상장이 중지됐던 '고섬 사태'가 다시 오는 게 아닌지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11년 상장됐던 고섬은 1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2년여 만에 상장 폐지됐다.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면서 국내 투자자들은 투자 손실을 봤고, 증시에선 한동안 '중국 기업은 쳐다보지도 말자'란 분위기가 퍼졌다.


    금융 당국과 한국거래소는 중국 기업 상장에 대한 투자자 불신이 퍼지는 문제를 알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한 채 뒷짐만 지고 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총 11개사로 시가총액은 1조9795억원에 달한다.


    ◇되살아나는 상장 중국 기업의 악몽


    중국원양자원은 지난 4월 '홍콩 업체로부터 이자 등 74억원을 갚지 못해 지분이 가압류됐다'는 등 2건의 공시를 거짓말로 한 사실이 최근 적발됐다. 거래소는 중국원양자원의 대주주가 유상증자를 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 같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고 분석 중이다. 거래소는 지난 4월 25일 중국원양자원에 대한 거래를 중단시켰다. 거래소는 이달 말 이 기업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해 벌금 부과 등 페널티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허위 공시를 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검찰 고발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불신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이미 국내에 상장된 일부 중국 기업들이 불투명한 회계와 허위 공시를 일삼고 있고, 국내 투자자들의 알토란 같은 투자금을 이용해 시세 차익을 거두고 먹튀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게 '고섬 사태'였다. 중국 섬유업체를 자회사로 둔 지주사 고섬은 2011년 1월 국내 증시에 상장됐다가 3개월 만에 1000억원대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적발돼 2013년 10월 상장 폐지됐다. 국내 투자자들은 2000억원 정도의 투자 손실을 봤다. 그 후 한동안 중국 기업은 국내에 상장을 알아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러다 올해 들어 중국 기업 상장이 다시 발동 걸렸다. 올해 1월 합성운모를 파는 중국 기업 '크리스탈신소재'가 '고섬 사태' 이후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됐다. 현재 중국 기업 10여 개사가 상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역시 중국계 상장사는 믿을 수 없다'란 투자 심리가 퍼지면 이런 분위기는 반전될 수 있다.


    ◇부실 상장 두고 책임 공방만


    이 같은 문제는 중국 기업이 상장될 때 사전 검증이 부실하고, 사후 관리도 거의 없어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외국 기업이 국내 증시에 상장할 때는 우선 주관사(증권사)를 선정해 실사를 벌인 뒤 거래소에서 상장 예비심사를 받는다. '1차 관문'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부터 허술하다. 주관사는 기업이 상장돼야 수수료를 벌기 때문에 기업에 유리한 실사 보고서를 낸다. 중국 기업의 회계가 적정한지 확인하기 위해선 회계법인에 외주를 주는데, 중국 측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한 대형 회계법인 임원은 "최근 중국 현지에 가서 적정성 여부를 따져보려고 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심사를 하는 거래소도 주관사가 제출한 자료가 정확한지 자세하게 알 방법은 거의 없다.


    중국 기업이 거래소 심사를 통과하면 금융감독원은 증권신고서를 검토해 요건에 맞게 제대로 기재했는지 등을 따져본다. 하지만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신고서 요건이 맞는지만 확인할 수 있고 기업을 상장시킬지 결정하는 것은 거래소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상장제도를 담당하는 금융위원회는 "외국 기업이 상장하기 힘들도록 차등을 준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관계기관들이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는 동안, 상장된 중국 기업은 말 그대로 ‘방치’ 된다. 미국은 사후 관리가 철저하다. 미국은 외국 기업이 상장을 하면 기업이 제대로 된 회계감사를 받고 있는지 당국에서 1년에 한 번 해당 기업 감사를 하는 회계법인에 직접 가서 확인한다.


    애초 제대로 된 중국 기업을 유치하는 게 관건이지만 그것도 어렵다. 현재 중국에선 상장을 기다리는 기업이 600~700여 개사에 달하는데, 중국 금융 당국은 중국 내 상장을 깐깐하게 보면서 돈이 될 알짜 기업의 해외 상장도 막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때문에 한국 증시의 문을 두드리는 중국 기업은 사양산업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국내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산월 국민대 교수는 "우리 금융 당국과 거래소가 중국 당국과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두고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