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적자 조선업, 인력은 '사상 최다'

    입력 : 2016.07.11 09:42

    [해양플랜트 공사 지연 막으려 협력업체 신입직원 대거 투입]


    - 막대한 배상금 안 물기 고육책
    1척당 1조원 넘는 해양플랜트, 인도 늦어지면 1일 1억원 배상금


    - 호황기 때 인력의 두 배 달해
    본사 인원은 그때와 비슷하지만 협력업체 직원은 폭발적 늘어
    현재 건조 중인 물량 정리되는 내년 초부터 대량 실직 가능성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에선 요즘 수백명이 한꺼번에 체육관에 모여 윗몸 일으키기 등 체력 시험을 받는 풍경이 1주일에 서너 차례씩 펼쳐진다. 조선소 근무를 희망하는 협력업체 소속 신입 직원들은 체력 시험을 통과하면 다음 날 8시간 동안 진행되는 안전교육도 받아야 한다. 안전교육은 조선소 작업 현장에 투입되는 신입 작업자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이다. 야외 안전교육장에선 안전벨트 착용법과 소화기 사용법 등을 익힌다. 이렇게 체력 시험과 안전교육을 거쳐 삼성중공업 작업 현장에 투입되는 협력업체 신입사원이 1주일에 1000명이 넘는다.


    사상 최악의 불황이라는 조선소에 협력업체 신입사원이 대거 투입되는 이유는 뭘까.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해양 플랜트 작업 공정을 맞추려면 일손이 더 많이 필요하지만 실적 악화로 구조조정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본사 직원을 뽑을 수 없어 협력업체 직원을 대거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3대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이 지난해 6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는 등 사상 최악의 위기에 빠져 있지만, 협력업체를 포함한 임직원 수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실적이 나빠지면 작업 인력이 줄어든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각 조선소마다 초대형 부실을 초래한 해양 플랜트 부문의 공정 지연을 막기 위해 협력업체 작업자를 대거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 초부터는 각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해양 플랜트 물량이 어느 정도 정리되기 때문에 협력업체 작업자가 집중적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조선소가 몰려 있는 울산·거제 지역에서는 급격한 '고용 절벽'이 발생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해양플랜트 工期 맞추려 최대 인원 투입


    지난 3월 현재 협력업체를 포함한 삼성중공업의 직간접 고용 인력은 역대 최고인 4만4716명에 달했다. 본사 소속 임직원을 뜻하는 '직영'은 1만4288명이고, 협력업체 임직원은 직영의 2배 이상인 3만428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2013년 말 2만명을 약간 웃돌던 협력업체 임직원은 2년여 사이에 50% 안팎 늘었다.


    현장 작업자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있는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지난해 8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한 3대 조선업체는 대규모 부실을 초래한 해양 플랜트 건조 공정의 지연을 막기 위해 협력업체 직원을 대거 투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약 3조원의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해양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 3월 현재 직간접 고용 인원이 4만8250명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3대 조선소가 일제히 사상 최대 이익을 올리며 호황기를 구가하던 2009년 대우조선해양의 고용 인원이 약 2만7800명이던 것을 감안하면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고용 인력 급증은 협력업체 임직원이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직영 임직원은 거의 같거나 약간 줄었다. 2013년부터 해양 플랜트 건조 과정에서 공정 지연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협력업체 작업자를 임시방편으로 대거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1척당 수주 금액이 보통 1조원을 넘는 해양 플랜트는 인도가 늦어지면 하루에 1억원이 넘는 배상금을 발주처에 물어줘야 한다. 조선소 입장에선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는 사태를 막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으로 협력업체 작업자를 대대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작업 공정에서 차지하는 협력업체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호주 익시스 해양가스설비와 나이지리아 에지나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장비(FPSO) 등 골치 아픈 해양 플랜트 물량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삼성중공업은 현재 협력업체 작업 비중이 8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조원 이상의 손실을 초래한 송가 시추선을 올해 1분기까지 모두 인도한 대우조선해양은 한때 협력업체 작업 비중이 90%에 육박했다.


    ◇내년 초 이후엔 실직 비상


    협력업체 작업자 투입이 늘면서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도 급증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현재 인건비 비중이 21%에 달하고 대우조선해양도 20%에 달한다. 우리나라 30대 그룹 계열사의 인건비 비중이 평균 9%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3대 조선업체의 인건비 비중은 2배 이상인 셈이다.


    높은 인건비 비중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조선업체는 과거 인건비 비중이 15% 안팎일 때 5% 안팎의 이익을 노리고 선박이나 해양 플랜트 수주에 나섰다. 하지만 지금은 인건비 상승분이 이익을 잠식해, 수주 물량을 적기(適期)에 인도하더라도 이익을 남기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3대 조선소가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해양 플랜트 물량을 어느 정도 정리하면 협력업체 작업자가 상당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감이 없어져도 고용이 보장되는 직영 작업자와 달리 대부분 규모가 영세한 협력업체는 원청 업체로부터 하도급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파산할 가능성이 높아져 인력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협력업체 직원들 사이에선 “힘들고 궂은 일은 다 우리가 떠 안아서 하는데 하도급 계약이 끝나면 일자리를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3대 조선업체 노조가 모두 파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정작 파업을 벌여야 할 사람은 협력업체 직원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면서 “남아 있는 해양 플랜트가 대부분 정리되는 내년 초 이후 협력업체 직원이 대거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가 지금부터 이들의 고용 안정성을 높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