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열흘... 기침은 멈췄지만 만성 질환처럼 괴롭힐 것

    입력 : 2016.07.04 09:23

    글로벌 低성장 악순환 - 英 EU탈퇴 로드맵은 안갯속
    포퓰리즘 목소리 득세도 우려… 세계 성장률 10% 날아갈 수도


    '소방수' 중앙은행들의 고민 - 美, 年內 금리인상 어려울 듯
    日, 기준금리 추가 인하 검토… 한국도 금리 또 내릴 가능성


    '브렉시트(Brexit)의 최대 피해자는? 정답은 엉터리 예측을 내놓은 전문가들.'(파이낸셜타임스)


    브렉시트 이후 열흘이 채 안 돼 글로벌 금융시장이 평온을 되찾자 영국의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가 3일자 칼럼에서 이런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실제로 중국 등 아시아 증시는 브렉시트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거나 오히려 올랐고, 유럽 증시는 낙폭의 절반 정도를 이미 회복했다. 브렉시트가 연착륙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소방수'로 나선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돈줄을 푸는 등 긴밀하게 공조하는 데다 브렉시트가 경제 위기라기보다 정치 위기라는 점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브렉시트발(發) '저성장'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의 고민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反브렉시트 가두행진 - 2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반(反)브렉시트 집회 참가자들이 가두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4만여명이 몰려나와 영국의 EU 잔류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브렉시트 가결 직후 재투표를 요구하며 영국 하원 의회에 청원한 EU 잔류 지지자들의 숫자는 400만명을 넘어섰다. /신화 연합뉴스


    ◇'글로벌 저성장' 장기화


    세계 금융시장이 브렉시트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지만, 단기 충격이 멈췄을 뿐 장기 악재로서의 위험성은 잠복해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진단이다. 무엇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로드맵이 안갯속에 놓여 있다. EU 탈퇴 협상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경우 어떤 돌발 악재가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다. 31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뒤 여전히 브렉시트 전보다 11% 정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파운드화 가치는 영국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준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브렉시트의 가장 큰 경제적 위험은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권 목소리가 커지고, 고립주의가 득세하면서 세계경제가 저성장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증권은 영국과 EU 간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불확실성이 고조돼 세계 성장률의 10분의 1 정도가 날아갈 것으로 예상한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뇌졸중이었다면 브렉시트는 만성 질환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민에 빠진 주요국 중앙은행들


    브렉시트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소방수 역할을 해온 각국 중앙은행들엔 큰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올해 안에 금리를 더 올리려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발목을 붙잡았고, 일본은행(BOJ)에는 엔저에 기반한 아베노믹스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엔고' 폭탄을 안겨주고 있다.



    블룸버그 집계치를 보면 금융시장 투자자들은 연준이 연내에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아야 10% 정도라고 본다. 브렉시트 투표 직전 50%에 달했던 확률이 크게 낮아졌다. 금리 결정을 위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7·9·11·12월 네 차례 남아 있지만 11월까지 금리 인상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미국의 금리 인상 행보가 주춤해지면서 국내에선 한국은행도 기준 금리(현재 1.25%)를 더 내리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온다. 권영선 노무라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는 "브렉시트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2.5%에서 2.2%로 0.3%포인트 낮아지고, 대응 차원에서 한은이 올해 안에 두 차례 금리를 인하해 기준 금리를 연 0.75%까지 낮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브렉시트 당사국인 영국 중앙은행(BOE)은 이달 또는 다음 달 금리 인하나 추가 양적 완화를 검토 중이다. 일본은행도 이달 중 기준 금리(현재 연 -0.1%)를 더 낮출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의 추가 금리 인하 등 경쟁적인 통화 완화 정책은 자산 버블과 환율 전쟁으로 이어져 세계경제에 큰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