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업무 카톡'까지 法으로 막자는 국회

    입력 : 2016.07.01 10:06

    [여소야대 국회, 황당法案 잇따라]


    있던 규제 없애도 모자란데 사규로 하면 될 일을 법으로 강제
    대기업 정원 5%를 청년으로 채용, 19代 때 폐기된 법안 다시 등장
    '삼성생명의 電子지분 팔아라'… 삼성 겨냥한 '보험업法'도


    "극장에서 예고편은 틀지 마라." "전 직원의 출퇴근 시각을 매일 기록하라." "퇴근 후 업무 카톡은 금지한다."….


    20대 국회가 지난 한 달간 발의한 법안 500여 건 중 일부 내용이다. 최근 국회가 법으로 규제하기에 부적절한 내용을 담은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다. 특정 기업·집단에 타격을 주기 위해 만든 '표적 입법'도 많다. 과거엔 소수 의견으로 여겨졌던 다소 황당한 법안들도 여소야대의 20대 국회에선 통과 가능성이 높아 관련 업계와 단체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있던 규제를 없애도 모자랄 판국인데, 최근 발의안들을 보면 의원 입법이 오히려 '장애물 없는 규제 기관차'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도덕으로 규율해야 할 일을 법으로


    더민주 신경민 의원은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을 발의했다. 업무 시간 외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나 문자·전화로도 업무 얘기를 못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퇴근 이후 직장 상사가 카톡으로 업무 관련 지시를 할 경우, 부하 직원이 회사에 신고를 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기본적으로 개인 간 통신의 자유 등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굳이 하고 싶다면 사규(社規) 정도로 하면 될 일을 입법하는 것은 법과 도덕을 구분 못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민주 이찬열 의원은 일명 '칼퇴근법'을 발의했다. 기업은 직원들의 근무 시작과 종료 시각을 일별로 기록하고, 현황을 공시하라는 내용이다. 초과 근무를 시키는 기업은 장시간근로유발부담금을 부과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송원근 전경련 본부장은 "유연근무제나 재택근무제가 확산되고 있는 시대 변화나 직업·업종별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황당한 법"이라며 "지금은 일한 양이 아닌 질이 중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휴일을 강제하는 법안들도 잇따랐다. 새누리당 경대수 의원은 설날·추석 연휴, 어린이날이 공휴일과 겹치면 며칠 더 쉬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냈다. 더민주 안규백 의원은 "군 입대자의 입영일에 가족 동행을 보장하자"며 군 입대자를 둔 부모·형제자매의 고용주에게 유급휴가를 강제하고, 이를 어기면 병무청이 제재토록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도 기업들은 연차를 보장하고 있고, 샌드위치 데이를 휴일로 정하기도 한다"며 "개별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일을 휴가로 강제하는 건 억지스럽다"고 말했다.


    기업의 자율 경영을 심각하게 해치는 법안도 이어진다. 19대 국회 당시 폐기된 '청년고용촉진법'은 20대 국회에 다시 등장했다. "근로자 1000명 이상 대기업은 해마다 정원의 5%를 청년(34세 이하)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재계 관계자는 "구조 조정 중인 조선 3사의 올해 신규 채용 규모는 300여 명인데, 이 법대로 하면 3000여 명을 고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기업·집단 겨냥한 '표적 입법'도


    특정 기업·집단을 겨냥한 표적 입법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7일 심상정 의원이 발의한 '최고임금법'은 대기업 임원 등 고소득층을 겨냥한 법이다. 심 의원이 '살찐 고양이법'이라 지칭한 이 법은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으로, 현행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최고 연봉은 4억5000만원을 넘어선 안 된다. 문상일 인천대 법대 교수는 "미국에는 부실·불법 경영 책임을 묻기 위해 임원 보수를 일부 환수하는 규정이 있지만, 최고 액수를 제한하는 법은 선진국 어디에도 없다"며 "이런 제한을 두면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주승용 의원은 극장업계를 겨냥해, 극장들의 영화 예고편 상영을 금지하는 법안도 발의했다. 극장들이 수입의 90%를 광고 영화 수익에서 얻는데, 이 예고편 때문에 관객들이 불편하다는 이유에서다. 극장업계 한 관계자는 "예고편 상영이 금지되면,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을 겨냥한 '삼성법'도 잇따르고 있다. 이종걸 의원의 보험업법은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7.3%·약 15조원)을 대부분 팔도록 하는 법이다. 이 경우 삼성그룹은 지배구조가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박영선 의원도 삼성에 타격을 주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활동을 더 자유롭게 하는 입법 경쟁이 한창인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면서 "이러고도 국회가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얘기할 수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