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점업체 울리는 '백화점 3大 갑질'... 공정위가 손본다

    입력 : 2016.07.01 10:00

    [5개 대형 백화점 사장들과 간담회 갖고 개선 방안 마련]


    매출의 최대 40~49% 달하는 판매수수료율 낮추도록 유도
    인테리어 비용 지불한 업체엔 입점 기간 최소 2년 보장
    판촉행사·무료 사은품 강요 불공정행위 유형에 명시하기로


    "20년 이상 백화점과 거래한 중소 업체치고 제대로 성장한 사례가 전무(全無)합니다."


    한때 구두업계의 '혁신기업'으로 꼽히던 엘칸토·영에이지·엘리자베스·메세·이사벨 등 업체는 과거 남대문·동대문과 같은 전통시장에 기반해 성장했다. 하지만 브랜드 고급화를 위해 백화점에 입점한 뒤에는 오히려 성장세가 시들해졌다. 40%가 넘는 수수료율 등 백화점의 '갑질'이 성장 동력을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메세·이사벨 등은 줄줄이 도산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높은 판매수수료, 매장 이동과 인테리어 비용 전가, 판촉 행사 강요 등 이른바 입점 업체에 대한 백화점의 '3대 갑질'을 대폭 손보기로 했다. 또 올해 중 백화점의 불공정 행위 조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30일 롯데·신세계·현대·갤러리아·AK 등 5개 대형 백화점 사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백화점과 중소 입점 업체 간 거래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국내 백화점 입점업체 약 7106곳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매출 절반 가져가는 '판매수수료' 낮춘다


    지난 10년간 국내 주요 백화점에 입점해 영업 중인 A남성복 업체는 매장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의 40%를 백화점에 수수료로 지불해왔다. 하지만 A업체 인근에 입점한 해외 브랜드가 백화점에 지불하는 수수료율은 10%에 불과하다. A업체는 "대기업이나 해외 브랜드의 수수료 수준을 보면 일할 의욕이 떨어지고,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높은 판매수수료율은 입점업체들의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꼽힌다. 백화점에 입점한 한 구두업체는 "백화점 입점은 '독이 든 성배'"라며 "높은 수수료율 때문에 수익률은 크게 떨어지지만,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니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간다"고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작년 백화점 7개사의 판매수수료율은 평균 27.9%다. 판매수수료가 공개된 이래 2012년 29.2%에서 매년 소폭 인하됐다. 하지만 전체 26개 상품군 가운데 잡화, 여성 정장 등 12개 상품군에는 40~49%의 높은 수수료율이 적용되고 있다. 어렵게 물건을 팔아봐야 매출의 절반가량을 백화점에 뜯기는 셈이다.


    공정위는 수수료율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향후 수수료율 공개 범위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김재신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정부가 판매수수료에 직접 개입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자세히 공개하면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대·중소기업과 국내·해외브랜드의 전체 평균 수수료율만 공개했지만, 앞으로는 상품군별 수수료율 차이까지 공개한다. 실제 작년 조사 결과 소형 가전제품의 경우 입점업체별로 수수료율이 6~45%까지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판매수수료 계산 방식도 바꾸기로 했다. 매출 비중을 고려하지 않고 수수료율을 계산하다 보니 잡화 등 수수료율이 높고 매출도 큰 업종의 수수료가 상대적으로 적게 반영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백화점이 판매수수료율이 인하된 것처럼 보이려고 매출 비중이 작고, 수수료율이 낮은 품목을 만들어 평균값을 '물타기'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부 주도의 대형 할인 행사나 입점업체의 자체 세일에 기존 수수료율을 그대로 적용하던 관행도 손본다. 입점업체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할인행사 수수료율을 표준계약서에 적시하지 않으면 표준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으로 처리해 이후 평가 때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여한 5개 백화점 업체는 이날 40%가 넘는 일부 품목의 판매수수료율을 자율 인하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로 최고 판매수수료율이 30% 후반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점포이동, 인테리어 부담 줄여주기로


    입점업체의 인테리어 부담도 덜어주고, 향후 점포 이동의 예측 가능성도 높이도록 했다. 입점 후 약 1년 뒤 백화점의 요구로 매장을 이동하는 경우가 빈번한데, 인테리어 비용을 지불한 업체에 입점 기간을 최소 2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인테리어 비용을 회수하기도 전에 퇴점하는 피해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또 입점업체가 매장 이동이나 퇴점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도 강화한다. 중소 의류업체의 한 대표는 "일반 중소 점포들도 같은 자리에서 안정적으로 장사하는 게 중요하다"며 "백화점이 자주 점포 위치 등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 문제였다"고 했다.


    입점업체에 이익이 되는 매장 이동의 경우 백화점이 매장 인테리어 비용의 50% 이상을 분담하도록 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공정위는 "업체가 먼저 '좋은 자리로 이동하고 싶다'고 백화점에 요구해도, 백화점이 인테리어 비용의 50%를 부담하기 때문에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입점업체 단체인 패션협회는 작년 이 규제 때문에 백화점이 입점업체의 매장 이동 요구에도 소극적으로 응한다며 폐지를 건의했다.


    이 밖에도 지방 소도시 백화점 점포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판촉행사 참여 강요도 바로잡기로 했다. 판촉행사 강제성의 판단 기준을 마련하고, 무료 사은품을 주도록 강요하는 등의 판촉비용 전가 행위도 불공정행위 유형에 명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