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불길 잡아라"... 손발 맞추는 '세계의 소방수'들

    입력 : 2016.06.28 09:44

    [브렉시트 쇼크] 각국 중앙은행들 정책 공조


    패닉 확산 막았다- 英, 브렉시트 아침 "400조원 투입"
    옐런·드라기도 "유동성 공급"… 라가르드 "브렉시트, 공포 아니다"


    공조 유지가 관건 - 유럽·일본 마이너스 금리 상황
    재정 무한정 살포도 쉽지 않아, 엔고 맞은 日… 환율전쟁 우려도


    런던 현지 시각으로 지난 24일 새벽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결과는 지구 반대편 아시아 증시부터 패닉에 빠트렸다. 아시아 증시를 파랗게 물들인 브렉시트 쓰나미는 이어 개장한 유럽 증시를 강타했다. 파운드화 가치는 자유 낙하했고, 유럽 증시에선 폭락장이 펼쳐졌다. 이날 오전 9시 20분쯤(런던 현지 시각) 영란은행 마크 카니 총재가 TV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가능한 한 모든 수단(all necessary steps)을 동원하겠다. 2500억파운드(약 400조원) 유동성(자금) 투입 준비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장 초반 8% 가까이 빠졌던 영국 증시는 카니 총재의 발언 이후 반등에 성공, 3% 하락으로 마감했다. 카니 총재는 캐나다 사람이다. 2013년 영란은행 319년 역사상 첫 외국인 총재로 취임한 인물이 미증유의 사태에서 소방수 역할을 한 것이다.


    카니 총재의 발표 직후 다른 나라 중앙은행 총재들이 잇따라 지원 사격에 나섰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통화 스와프(맞교환)를 통해 달러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긴급 성명을 내놓았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시장에 유동성을 추가로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표했다. 브렉시트 1차 충격이 크긴 했지만 이 정도 선에서 위기의 전염을 막은 데는 주요국 중앙은행 간의 긴밀한 공조가 나름의 '방화벽'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브렉시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중앙은행의 위기 대응 시스템이 질서 있게 잘 작동했다는 평가가 나오며 27일 시장은 비교적 안정을 찾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재닛 옐런 의장(사진 왼쪽)과 국제통화기금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AP·AFP 연합뉴스


    26일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브렉시트가 그렇게 공포스럽지 않으며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며 "중앙은행 총재들이 충분한 유동성을 풀어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했고 정책 입안자들도 시장 참여자들에게 상황이 통제권 안에 있다는 확신을 줬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 질리언 테트도 "중앙은행 위기 대응 시스템이 질서 있게 잘 작동했다"고 평가했다.


    ◇다시 전면에 나선 중앙은행 '소방수들'


    중앙은행들 간의 공조는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때마침 지난 25~26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국제결제은행(BIS) 세계경제회의·연차총회에 참석한 세계 30개국 중앙은행 총재들은 이례적으로 '각국의 금융 안정 상황을 지켜보면서 긴밀하게 협력하겠다'는 내용의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중앙은행 총재들은 또 27~29일 포르투갈에서 ECB가 주최하는 포럼에 참석해 공동 대응책을 모색한다. 이 자리에는 옐런·드라기·카니 총재 외에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도 참석한다.


    현재 G7 국가들끼리는 무제한의 통화 스와프(상대국 간의 통화 맞교환 계약)가 체결돼 있어 언제라도 달러 인출이 가능하다. 파운드화 가치 폭락으로 영국 금융회사들이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영국 중앙은행이 다른 나라 중앙은행으로부터 달러를 빌려 신용 경색을 막을 수 있는 셈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영국과 ECB가 금리를 더 낮추고, 미국도 금리 인상 시점을 늦추는 등 정책 공조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공조 깨지면 통화 전쟁 촉발돼


    문제는 브렉시트발(發) 금융시장 불안이 장기화되고, 글로벌 무역 위축 등으로 각국의 실물 경제에도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상황이 됐을 때도 각국의 공조 기조가 유지될 수 있느냐다.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제로(0)금리,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푸는 것), 급기야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도입하며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미국이 후유증을 우려하며 출구 전략(금리 인상)을 모색하는 와중에 브렉시트라는 악재가 터졌다.



    마이너스 금리 확대 등 추가 유동성 공급은 자산 버블, 인플레이션, 금융회사 수익성 악화 등 부작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경제 분석 기관 롬바르드의 초이레바 수석 경제분석가는 "시장은 실탄 소진을 걱정하고 있다. 빚을 더 늘리는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 간의 공조가 깨지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접어들면 환율 전쟁이 벌어지며 공멸의 길로 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공조를 깰 수 있는 요주의국 1순위로 일본을 꼽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살리기 위해 공격적인 엔저 정책을 재차 시도하면 국제 공조에 금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