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홍부장님 대신 길동님이라 부르세요"

    입력 : 2016.06.28 09:19

    [직원간 이름 뒤에 '님' 호칭으로 통일… 그룹장·파트장·임원은 유지]


    - IT 경쟁 위한 이재용式 변화
    직급도 사원~부장 5단계서 '경력개발단계' 1~4로 전환
    회의는 1시간 내로 최소화, 순차보고 대신 동시보고로
    하절기엔 반바지 착용 가능


    삼성전자가 직원들 사이의 호칭을 '님'으로 통일한다. 신입 사원이 상사인 홍길동 부장을 부를 때 '홍 부장님' 대신 '길동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장·과장·대리 등 연공서열 기반의 기존 직급은 폐지하고 업무 능력 중심의 '경력개발 단계' 제도도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이런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인사제도 개선안을 27일 발표했다. 직급이나 연차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년 3월부터 시행되는 개선안에는 회의와 보고를 대폭 간소화하고 여름철 반바지 착용을 허용하는 파격적인 방안도 포함됐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처럼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조성해 직원들의 창의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님'으로 호칭 통일… 명함엔 이름만


    회사 전체의 공통 호칭은 '님'이지만, 부서 안에서는 업무 성격에 따라 선배·후배님, 프로, 상대의 영어 이름과 같은 수평적 호칭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광고 부서라면 업계에서 통용되는 '프로'를 호칭으로 쓴다. 팀장·그룹장·파트장과 임원은 지금처럼 직책을 그대로 호칭으로 사용한다. 이런 직책을 맡은 경우 명함에 표기하지만 직책이 없으면 이름만 적는다.



    부장·차장·과장·대리·사원의 5단계로 운영해왔던 직급은 '경력개발 단계(Career Level·CL) 1~4'로 바뀐다. 경력개발 단계는 근무 연한보다 업무 전문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CL 3인 사람도 전문성을 인정받으면 근무 연한과 상관없이 팀장 등의 직책을 맡을 수 있다. 생산·연구직에 적용했던 수석·책임·선임·사원의 4단계 직급도 CL 1~4로 통일된다.


    삼성 특유의 회의 문화와 결재 관행도 뜯어고친다. 회의는 1시간 안에 끝내고 참석자 모두가 발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로 했다. 아무 의견 없이 억지로 회의실에 앉아 있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결재 단계를 따라 순차적으로 보고가 올라갔지만 앞으로는 결재 선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동시에 보고해 의사결정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여름철마다 논란을 빚었던 반바지도 입을 수 있다. 외부 손님을 만나는 경우처럼 문제가 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직군과 상관없이 착용이 허용된다.


    ◇굴뚝식 조직 문화로는 경쟁 어려워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스타트업 문화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모든 임원이 권위주의를 탈피하자는 내용의 선언문에 서명하며 기업 문화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후 내놓은 세부 계획이 이번 개선안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들이 우리의 운명을 마음대로 결정했다'고 항의하고 있다"며 "회사의 주역인 20~30대 젊은 층이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구식 문화를 혁신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개선안의 목표"라고 말했다.


    삼성이 사내 문화를 혁신하려는 배경에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상부의 지시를 따르는 데만 급급한 상명하복식 조직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IT(정보기술) 산업에서 경쟁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세계적 기업들 사이에는 직위나 직책 같은 '계급장'을 떼고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구글이 매주 목요일 본사 식당에서 여는 정례 모임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자리엔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을 비롯한 최고 경영층이 참가해 직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고 회사의 전략을 공유한다. 한양대 한상린 교수(경영학)는 "과거 굴뚝산업 시절에 만들어진 조직 구조로는 IT 산업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이재용 부회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만큼 삼성전자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반응도 나온다. 임원을 비롯한 고위직은 기존 호칭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이번 개편안만으로 조직을 완전히 바꾸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호칭을 바꾼다고 수평적 문화가 정착되는 것은 아니며 비슷한 시도를 했다가 실패한 대기업들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