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폭풍 맞은 국내 증시... 진짜 고비는 이번주

    입력 : 2016.06.27 10:33

    [36조원 영국계 자금 이탈 땐 단기적 충격은 불가피]


    유럽계 자금까지 빠져나가고 국내 투자자 도미노 이탈 땐 코스피 1700선까지 하락 경고도
    각국 중앙은행 정책 공조 시사… 美 기준금리 인상 어려워져
    "2008년 위기 수준까진 안 될 것"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후폭풍이 어디까지 확산할지에 대해 투자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증시 투자자들도, 유럽 증시의 움직임에 따라 손실을 볼 수 있게 설계된 ELS(주가연계증권)에 가입한 투자자들도 더 미로 속으로 들어가버린 금융시장을 바라보면서 딱히 방향을 찾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브렉시트 충격으로 지난주 '검은 금요일'을 맞았던 증시의 향방은 이번 주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시장이 고꾸라져 한동안 맥을 못 출지, 혹은 여러 '위기'를 겪으며 맷집을 키운 시장이 비교적 빨리 정상 궤도에 올라설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다. 예상치 못한 브렉시트의 여진이 당분간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 지연과 글로벌 금융 시장의 국제 공조 등 충격을 상쇄할 변수들도 있기 때문이다.


    ◇36조원 달하는 영국계 자금이 '변수'


    24일 한국 증시는 3.1%(코스피 기준) 내려갔다. 6~8%씩 급락한 유럽·일본 증시에 비하면 선방한 편이다. 하지만 이날 한국 증시엔 유럽·미국 증시 하락 여파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만큼 '진짜 고비는 이번 주'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증시에는 약 36조원에 달하는 영국계 자금이 들어와 있다. 전체 외국인 투자 자금의 8.4%를 차지한다. 영국령이며 조세피난처로 이름난 케이맨군도까지 합친다면 투자금은 45조원에 달한다. 이 자금이 이탈할 경우 단기적인 충격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와 금 같은 안전 자산 선호도가 치솟는 반면 국내를 비롯한 신흥국 증시에선 자금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며 "단기적으로 코스피지수가 1850선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아일랜드와 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계 자금까지 연쇄 이탈할 경우, 코스피가 1700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외국인뿐 아니라 국내 투자자의 악화된 투자 심리도 걸림돌이다. 외국인 이탈 우려로 국내 투자자까지 증시에서 빠져나가는 도미노 현상이 우려된다는 얘기다. 이달 들어 브렉시트가 무산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개인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들이는 '신용 거래 융자' 규모가 7조3000억원까지 치솟았는데, 주가 급락으로 매도 주문이 늘면 증시는 더 하락할 수 있다.


    비관론만 있는 건 아니다. 이 같은 위험 요인에도 이번 브렉시트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파장이 2008년 금융 위기 수준은 아니며 반등의 계기도 충분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브렉시트 결정 직후 미국·EU·일본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브렉시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 공조에 나설 뜻을 밝혔고, 우리 정부도 대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예고한 상태다. 또 브렉시트로 올해 하반기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상이 사실상 어려워져 글로벌 증시의 반등 여력이 있다는 논리다. 24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그룹이 산출한 연내 금리 인상 확률은 투표 전 57%에서 16.3%까지 떨어졌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기업들의 2분기 실적도 좋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국내 증시는 다른 나라 증시에 비해 급락할 가능성이 낮다. 코스피가 1900 아래로 내려가면 주식을 사도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로스톡스 ELS "10% 더 하락하면 원금 손실 시작"


    브렉시트 개표가 진행된 24일 가장 크게 요동친 건 환율이다. '당분간 달러 강세가 대세'라는 의견이 많다. 이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하루 사이 40원 넘게 요동치다가 29.7원 오른 1179.9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하나금융투자 소재용 연구원은 "불확실성으로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달러·엔화 등 선진국 통화가 단기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브렉시트가 유로존 붕괴 위험을 가중시킨다는 전망이 커질수록 원화 약세(환율 상승) 압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동은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2013년 미국이 양적 완화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을 때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통화가 급격한 약세를 보이고 외국 자본이 빠져나갔는데 비슷한 일이 재발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단, 한국이 계속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단기 외채 비율을 낮추는 등 외화 건전성을 개선해 왔기 때문에 다른 신흥국에 비해 원화 가치의 하락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로스톡스50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ELS를 산 투자자들의 손실 가능성에 대해선 '유럽 증시 하락이 지속되면 손실도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한국 투자자들이 보유한 ELS는 약 70조원 규모인데, 이 가운데 43조원이 '유로스톡스 50'을 기초 자산의 하나로 편입하고 있다. ELS는 보통 기초 자산이 구입 시점 대비 40~60% 하락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하도록 설계돼 있다. 지난해 5월 유로스톡스50이 3800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지수가 약 2200 이하로 내려갈 경우 연쇄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유로스톡스50지수는 24일 8.6% 하락한 2776.09로 거래를 마쳤다. 금융업계는 유로스톡스50지수가 지금보다 10% 더 하락하면 투자자들의 원금 손실이 시작되고 30% 내려가면 원금 손실 규모가 2조원 이상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ELS 중엔 유로스톡스50과 H지수(홍콩)를 섞어 기초 자산으로 쓴 경우가 많아 브렉시트로 인한 H지수의 동향도 투자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 김한수 연구위원은 "브렉시트에 대해선 각종 경제 협약의 재협상 방식, 다른 회원국의 탈퇴 가능성, EU 자체의 존속 가능성 등 앞으로의 시나리오가 수백 가지가 넘는다"며 "단기적으로 시장의 방향이 결정되기보다는 불확실성이 1년 넘게 이어지는 불안한 시장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