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는 빙산의 일각... 反세계화, 만성 경제위기 부를 것"

    입력 : 2016.06.27 10:22

    [브렉시트 쇼크] 글로벌 경제 어디로


    일단 과거보다는 충격 덜 받아 - 탈퇴결정 직후 美증시 3.4% 하락
    2008년 같은 투매현상 안 나타나… 여러번 위기 겪으며 반응 무뎌져


    위기 장기화 대비를 - 기존 경제 질서에 대한 도전 시작
    당장 특정國 부도 나진 않겠지만 2차 충격 훨씬 더 크고 오래갈 것


    지난 24일(현지 시각) 글로벌 금융시장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 결정으로 증시가 3% 이상 급락하는 1차 충격을 받았다. 충격의 진앙인 영국 증시는 개장 직후 8% 폭락했다가 낙폭을 줄여 3.2% 하락 마감했지만, 유럽 증시는 은행주를 중심으로 6~8% 폭락하면서 초토화됐다. 대신 금, 달러, 일본 엔화 등 안전 자산을 찾아 글로벌 자금이 움직이느라 하루 종일 어수선했다.


    전반적인 글로벌 금융시장의 분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촉발한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2011·2012년 유럽 재정 위기를 촉발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 때와 비교하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대표 지수인 미국 다우지수는 이날 3.4% 하락해, 과거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5% 내외로 폭락하던 '패닉(공포)'을 보이진 않았다.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도 과거 위기 때와 같은 '투매' 현상이나 '사자' 주문이 실종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파이낸셜 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질리언 테트는 "시장이 브렉시트로부터의 첫 번째 스트레스 테스트(위기 상황을 가정하고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점검하는 것)를 통과했다"고 평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그동안 글로벌 경제는 유럽 재정 위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기,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등 돌발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 위기에 대한 반응이 더뎌지고 있다. 브렉시트는 1990년대 이후 세계화를 위해 달려왔던 세계경제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음에도 점점 위기가 만성화되면서 둔감해진 것이다.


    ◇"'리먼의 순간'은 보이지 않았다"


    알렉스 스터브 핀란드 전 총리는 브렉시트 투표 이전에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한다면 리먼 브러더스와 같은 충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나온 후에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 실물경제에 대한 악영향이 2008년 금융 위기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거 위기 때는 일부 국가가 국가 부도의 위기에까지 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무너지거나 구제금융을 받는 와중에 체력이 약했던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등이 국가 부도 위기에 빠졌다. 유럽 재정 위기 때는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이 휘청대더니 그리스가 국가 부도의 벼랑 끝에 몰렸다.


    하지만 아직은 브렉시트가 당장 특정 국가를 망하게 할 정도의 강도는 아니다. 증시를 통한 '1차 충격'의 여파도 리먼 브러더스 부도로 닥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엔 못 미치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이날 올해 영국의 성장률 전망을 2.0%에서 1.5%로 낮추고 유로존의 성장률 전망을 1.5%에서 1.3%로 낮춘 것 정도다.


    ◇'만성 위기'의 장기화에 대비해야


    그러나 이것은 '1차 충격'이 지나가는 데 불과하다. 금융시장의 충격은 단기에 회복될 수도 있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과거 위기와 달리 세계화와 무역을 통한 공동 번영이라는 기존 글로벌 경제 질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물경제를 통해 올 '2차 충격'은 과거보다 훨씬 더 크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브렉시트로 영국이 선택한 신(新)고립주의가 미국·유럽 등으로 확산된다면 앞으로 다가올 글로벌 실물경제의 침체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전임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24일 CNBC 인터뷰에서 "(브렉시트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글로벌 경제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브렉시트는 유럽의 실질소득과 경제가 침체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며, 앞으로 풀기 어려운 심각한 정치적인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25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서 "브렉시트는 유럽연합, 런던의 뱅커(은행가), 이민의 증가라는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며 "성난 영국의 투표자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분수령"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