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혁신, 아래로부터 시작된다

    입력 : 2016.06.24 11:13

    신기술 먼저 내놓는 후발주자들
    상위 1·2위 업체와 차별화 위해 틈새 노린 제품 활발하게 내놔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래로부터의 혁신'이 활발해지고 있다. 후발 주자들이 먼저 선보인 신기술·기능을 선두 업체들이 따라가는 것이다. 선두 업체의 기술을 하위권에서 모방하는 일반적 과정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데다, 후발 주자들의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하위권 업체들에서 먼저 나오는 것이다. 브랜드 파워가 약한 후발 업체들이 앞선 업체와의 차별화를 위해 더 새로운 시도에 적극적인 것도 이런 흐름의 배경이다.


    방수기능 / 2013년 세계 최초로 방수 기능을 탑재한 소니 스마트폰 엑스페리아Z

    듀얼카메라 / LG전자 G5 후면에 탑재된 2개의 카메라로 화각을 달리해 각각 촬영한 사진(왼쪽)과 화웨이의 듀얼카메라 스마트폰 P9


    ◇듀얼 카메라·대용량 램… 후발 주자들이 먼저 내놔


    혁신이 아래에서 위로 퍼져 나간 대표적인 사례가 듀얼(dual) 카메라다. 스마트폰 앞쪽이나 뒤쪽에 카메라 2개를 나란히 배열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쪽 면에 카메라 1개를 놓는 게 상식이었다.


    스마트폰 시장 2위인 미국 애플은 올가을 선보일 신제품 아이폰에서 이런 듀얼 카메라를 채택할 예정이다. 세계 1위 업체인 삼성전자는 내년 봄에 선보일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8에 듀얼 카메라를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듀얼 카메라를 먼저 선보인 업체는 이 1·2위가 아닌 LG전자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V10'앞쪽에 듀얼 카메라를 탑재했다. 하나는 일반 렌즈, 다른 하나는 더 넓은 범위를 담을 수 있는 광각(廣角) 렌즈를 썼다. LG전자는 올 2월 선보인 전략 스마트폰 G5에도 듀얼 카메라를 썼다.


    세계 시장 3위인 중국 화웨이도 올 4월 듀얼 카메라 스마트폰 'P9'를 내놓으면서 LG의 아이디어를 따라갔다. 카메라 2개 중 하나는 흑백 전용이다. 화웨이 측은 "흑백 카메라는 색상과 관계없이 빛의 양만을 감지하기 때문에 흑백 카메라로 얻은 명암 정보를 컬러 사진에 적용하면 더 선명한 상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의 램(RAM·임시 기억 장치) 대용량화는 중국의 신흥 강자들이 이끌고 있다. 중국 내 스마트폰 판매량 3위인 비보는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6GB(기가바이트) 램을 탑재한 스마트폰 'X플레이5 엘리트'를 내놨다. 램의 용량이 커지면 순간 처리 속도가 빨라져서 여러 앱(응용 프로그램)을 동시에 실행해도 스마트폰이 느려지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의 램 용량은 4GB이며, 애플은 그 절반인 2GB를 사용하고 있다. 삼성과 애플은 올 하반기 램 용량을 각각 6GB, 3GB로 올린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금은 보편화한 스마트폰 방수 기능이나, 지문 인식 기능은 이미 3년 전에 소니와 팬택이 가장 먼저 세상에 선보인 혁신이다. 소니는 2013년 '엑스페리아Z'에서 세계 처음으로 방수 기능을 선보였고, 그 후 삼성전자가 갤럭시S5(2014년), S7(2016년) 등에 방수 기능을 적용했다. 팬택은 2013년 내놓은 '베가 LTE-A'에 지문 인식 기능을 넣었다.


    대용량 램(RAM) / 세계 최초로 6GB(기가바이트) 램(RAM)을 탑재한 스마트폰 'X플레이5 엘리트'.

    삼성전자 갤럭시S7을 물에 넣어 방수 기능을 시험하는 모습 / 김연정 객원기자


    ◇소프트웨어 개방돼 신기능 개발 쉬워


    스마트폰 시장은 상위 1~3위 업체의 순위는 변동이 적지만, 중하위권에서는 업체 수십 곳이 소수점 단위 점유율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조금이라도 앞서가기 위해선 새로운 기술과 기능을 선보여 눈길을 끌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마케팅을 목적으로 '스펙(사양)을 위한 스펙' 경쟁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마트폰이란 IT 기기가 동시다발적인 혁신이 일어나기에 적합하다는 분석도 있다. 스마트폰은 운영체제(OS)가 공개돼 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개방하고 제조사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과거 일반 휴대전화(피처폰) 시절엔 제품을 출시하려면 기기와 OS를 모두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공개된 OS 기반에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을 추가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쉽게 구현할 수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선두 업체들의 기술 수준이 높다 해도 모든 면에서 앞선 제품을 내놓기는 어렵다"며 "후발 주자들이 그 틈새를 노린 제품을 활발하게 선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