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 거부한 孫, 계속 던진다

    입력 : 2016.06.23 09:54

    日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 "나는 여전히 젊고 에너지 넘쳐… 5~10년 더 CEO로 경영하겠다"
    후계자 아로라 부사장 퇴임시켜


    인수한 스프린트 눈덩이 적자와 아로라의 부실투자 정상화 과제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이 직접 후계자로 지목했던 니케시 아로라 부사장을 22일 전격 경질했다. 손 사장은 "만 60세가 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려고 했지만, 더 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월 일본 도쿄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배경으로 띄운 채 앉아 있는 손정의 사장. /블룸버그

    "창업자(創業者)라는 사람들은 종종 미친 짓을 한다. 스스로를 항상 젊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 60세가 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려고 했지만 더 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사장이 22일 후계자로 직접 지목했던 니케시 아로라(Arora) 부사장을 전격 경질했다. 소프트뱅크는 이날 주주총회를 열고 아로라 부사장을 퇴임시켰다. 아로라 부사장은 야후재팬 회장 자리와 미국 계열사인 이동통신업체 스프린트의 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나 소프트뱅크의 고문으로만 남는다.


    소프트뱅크의 대주주인 손 사장은 주주총회에서 "앞으로 최소 5년이나 10년 정도는 계속 최고경영자로서 회사를 맡아 이끌고 싶다"며 "후계자였던 니케시 아로라 부사장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현재 58세인 손 사장은 2014년 구글의 수석 부사장이던 아로라 부사장을 직접 영입하면서 본인이 60세가 되면 은퇴하고 경영권을 넘기겠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실제 경영권 이양 시점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오자, 입장을 바꾸고 그를 내보낸 것이다.


    ◇58세 손정의, "은퇴하기엔 너무 젊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신문에 따르면 손 사장은 이미 이달 초에도 아로라 부사장에게 "미안하지만 계획보다 오래 내가 소프트뱅크 CEO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손 사장의 변심(變心)이 아로라 부사장 경질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경질 인사에 대해 아로라 부사장도 "손 사장 본인이 더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해, 나도 '이런 천재가 경영에서 떠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도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고, 손 사장의 결정을 존중한다. 떠날 시간이 와서 떠나는 것일 뿐이다"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IT(정보기술)업계에선 이번 인사 배경에 2013년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미국 이통사 스프린트의 경영 부진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당시 손 사장은 스프린트 인수를 발판 삼아 미국 이통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한다는 야심을 드러냈지만, 미국 정부의 규제와 업황 악화 등으로 막대한 부채만 떠안은 상황이다. 승부사 기질이 다분한 손 사장으로선 스프린트 정상화를 남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매듭짓고 싶었을 것이란 시각이다.


    아로라 부사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주주들의 반발도 한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로라 부사장은 한국·인도 등의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아로라 부사장은 소프트뱅크로 온 뒤, 인도의 차량 공유 서비스인 올라캡스와 한국의 모바일 상거래 업체인 쿠팡 등에 수십억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또 인도 시장에만 1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올라캡스는 미국 우버에 밀리는 모양새이고, 쿠팡은 작년 한 해 동안만 5260억원의 적자(赤字)를 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로펌인 보이스실러앤드플렉스너는 소프트뱅크의 미국 내 주주들의 대리인 자격으로 지난 1월 소프트뱅크와 스프린트 이사회에 편지를 보내 "아로라 부사장이 소프트뱅크에 합류한 이후 투자 성과도 내지 못하고 업무에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며 경질을 요구했다. 또 아로라 부사장의 높은 연봉(연 80억엔·약 884억원)에 대한 주주의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손정의의 후계자, 다시 원점으로


    소프트뱅크의 후계자 선정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손 사장은 이날 니혼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60대에 은퇴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69세도 60대"라며 당분간 은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하게 했다. 소프트뱅크는 올해 들어 세계 각지에 투자했던 자금을 대거 회수하고 있다. 21일(현지 시각) 핀란드의 게임업체 수퍼셀 지분 73.2%를 중국 텐센트에 86억달러(약 9조9000억원)를 받고 매각했고, 지난 1일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주식 중 79억달러(약 9조1000억원)어치를 팔았다. 일본 게임업체 겅호온라인도 매각할 방침이다. 손 사장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손 사장은 "한 달 새 약 2조엔(약 22조 1204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확보했다"며 "큰 투자 기회가 왔을 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두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미친 짓 같은 투자나 사업을 시작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손 사장은 이날 "여전히 젊고, 에너지가 넘친다"며 "몇 가지 환상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런 아이디어를 새로운 사업으로 실현시키고 안정시킬 때까지는 자신이 경영 주도권을 잡고 있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