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에 치인 2030 "차라리 집 사자"

    입력 : 2016.06.21 09:18

    주택 담보대출 조였는데도 30代는 1분기 10兆 늘고 20代도 2조9000억 증가
    50·60대 대출은 오히려 감소


    서울 아현동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얼마 전 집주인으로부터 "반(半)전세로 바꾸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세 보증금 3억2000만원을 보증금 2억원에 월세 100만원으로 전환할 계획이라는 통보였다. 김씨는 월세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다른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하지만 비슷한 집에 살려면 보증금을 2억원 가까이 더 내야 하고 그나마 전세로 나온 집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해서 들었다.


    김씨는 "5억원이나 내고 전세 살다가 2년 지나 또 집 알아보러 다니느니 조금 더 보태 집을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금리도 많이 내렸다고 해서 은행에 주택 담보대출 조건을 알아보러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 보증금이 무섭게 오르는 동시에 대출 금리는 계속 내려가 '차라리 빚내서 집을 사겠다'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30대를 중심으로 주택 담보대출이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금융 당국은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부채를 통제하기 위해 주택 담보대출 심사를 보다 까다롭게 한 '여신 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지난 2월 시행했지만 '초초저금리'라는 '기름'을 만난 가계 대출의 불길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계속 번지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9일 기준 금리를 1년 만에 인하했으며 15일엔 변동금리 대출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 조달 비용 지수)도 추가 하락해 사상 최저(연 1.54%)를 경신했다.


    ◇전세금 오르자 30대 "차라리 빚내서 집 사자"


    금융감독원 분석 결과 올해 3월 말 기준 30대가 은행에서 받은 주택 담보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에 비해 10조4000억원이 늘었다. 올해 들어 3개월 사이에 지난해 말보다 대출이 11% 증가해 100조원을 넘어섰다.


    20대가 은행에서 받은 주택 담보대출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6조5000억원이었던 20대의 주택 담보대출은 올해 1분기 말 9조4000억원으로 2조9000억원(45%) 증가했다. 같은 기간 40대의 주택 담보대출이 1.3%(2조2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고 50·60대 주택 담보대출은 오히려 줄었다는 점(각각 3%·10%)을 감안하면 20·30대 대출의 증가 속도는 눈에 띄게 가파르다.


    젊은이들의 주택 담보대출은 치솟는 전세금에 낮아지는 대출 금리가 겹친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저금리가 장기화하자 싼값에 대출받아 보증금 빼주고 월세 받으려는 집주인이 늘었고, 이는 전세 품귀에 이은 전세금 폭등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KB 주택 가격 동향 분석 결과 지난해 서울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은 매매가 상승률(5.1%)의 약 2배 수준인 평균 9.6% 상승했다. 집값보다 전세 보증금이 빠르게 올라 전세 보증금과 매매가의 격차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2013년 말 서울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은 매매가의 평균 67%였는데, 이 비율은 지난 5월 말 75%까지 올라갔다. 성동·성북·동작구 등 서울 5개 구는 이 비율이 지난달 80%를 넘어섰다.


    A시중 은행 지점장은 "요즘 주택 담보대출을 받으러 오는 30대 중엔 전세 보증금이 너무 올라 지역을 조금 바꾸더라도 차라리 집을 사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소형 아파트의 경우 돌려받는 전세 보증금에 1억~2억원 정도만 더하면 살 수 있는 집도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리 오르고 집값 떨어지면 문제 생길 수도"


    20·30대의 주택 담보대출 증가가 당장 큰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은행은 보통 어느 정도 일정한 소득이 있어 이자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만 대출을 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 금리가 올라 이자 부담이 불어날 때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금리가 올라 변동금리 대출을 받은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거나 부동산 시장이 침체해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이 오면 불어난 대출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당장 문제가 안 보인다고 늘어나는 대출을 내버려두기보다는 미래 추정 소득 등에 따라 대출액을 세심하게 관리하는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