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만에 깨지는 韓電 독점... 전기료 상승 막는 게 숙제

    입력 : 2016.06.1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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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력·가스, 민간에 개방
    OECD 중 韓·멕시코·이스라엘만 그동안 전력 소매시장 개방 안 해
    전기·통신 결합한 新상품 가능… 소비자의 선택 폭 넓어질듯
    가스시장, 2025년부터 민간 개방… 전기·가스 요금 오를 가능성 커
    정부 "완화 장치 마련할 것"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전력 소매와 가스 도매 시장이 단계적으로 민간에 개방된다. 앞으로 소비자가 한전과 가스공사 이외 사업자로부터 전기와 가스를 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는 수십 년간 지속된 전기·가스 시장 독점 구조를 깨 해당 공기업 방만 경영을 개혁하는 한편, 민간 기업들에 새 먹거리를 마련해줌으로써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전력 소매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이스라엘 3개국뿐이다.


    ◇55년 한전 독점 전력 판매 시장 개방


    한전은 1961년 출범 이래 전력을 독점적으로 팔고 있다. 태양광·풍력 등 에너지 신(新)산업을 통해 생산한 전력도 일단 한전에 팔고 한전이 이를 다시 소비자에게 되파는 구조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는 하반기 중 이런 규제를 풀어 민간 사업자들이 소비자에게 직접 전기를 팔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오른쪽) 대통령이 14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2016 공공기관장 워크숍'에 황교안(왼쪽) 국무총리, 유일호(가운데) 경제부총리와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은 지난 4월 '전력 자유화'를 통해 누구나 전기 사업자로 등록해 전기를 팔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통신 사업자인 소프트뱅크나 케이블 방송사 주피터(J:COM) 등에서 전기와 휴대전화 또는 케이블TV를 묶은 결합 상품을 선보이며 전력 시장에 뛰어들었다.


    앞으로는 국내에서도 통신 사업자인 KT나 SK텔레콤·LG유플러스 등이 전기 사업에 진출, 휴대전화·TV를 함께 결합한 신상품을 통해 전력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상황에서는 대부분 전력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전보다 싼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자가 나오긴 어렵다. 하지만 통신 사업자들처럼 결합 상품을 통해 요금 할인을 해주거나, 대기업에서 설비투자를 통해 한전에 버금가는 원가절감을 실현하면 민간 사업자들도 소비자들 입맛에 맞는 전기 상품을 공급할 수 있다. 또 개인 취향에 따라 조금 비싸더라도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지역 발전에 참여해 저렴한 전기를 주민들에게 공급할 수도 있다. 실제 일본 미야마시는 에너지 회사에 출자, 지역 전기 사업자인 규슈전력보다 낮은 전기료로 주민들에게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전력 시장을 민간에 개방한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전기 요금이 올라간 사례가 더 많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우리 (주택용) 전기요금은 아직 OECD 국가들의 60% 수준"이라면서 "이번 개편은 전기 요금 인하가 아니라 에너지 신산업 사업자들이 시장에 신속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연가스도 다양한 공급처 등장


    천연가스 도입 시장은 가스공사가 94%를 차지하고 있다. 포스코와 GS에너지, SK E&S, 중부발전 등 일부 기업이 자기들이 직접 쓰기 위해 발전·산업용으로 가스를 도입할 순 있으나 미미한 수준이며 재판매는 금지되어 있다. 전국 가정·상점에서 쓰는 가스는 가스공사가 전량 지역 도시가스 사업자에게 재판매하는 구조다.


    문제는 가스공사가 과거 고유가 시기 장기 구매 계약을 맺으면서 가스를 현재 국제 현물시장 가격보다 2.5배가량 비싸게 수입하는 바람에 그동안 이 부담이 도시가스 사용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는데도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번에 규제를 풀어 2025년부터 가스 도입·도매 시장을 단계적으로 민간에 개방하기로 했다. 2025년은 현재 계약을 체결하고 받는 가스 도입량보다 국내 가스 수요가 더 많아져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 시점이다.


    ◇전기·가스 요금 상승 우려도


    전력·가스 부문 민간 개방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도 비슷한 제안이 있었지만 논란이 많아 무산된 바 있다. 가스 수입만 놓고 보면, 가스공사가 국가 단위 대용량·장기 계약을 통해 우월한 가격 협상력을 활용, 도시가스 요금 단가를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민간 사업자들이 대거 뛰어들면 경쟁이 가열되면서 해외 가스 수입 입찰가가 높아지고, 그 결과 국내 도시가스 요금 인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력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번번이 국회에서 반대 의견이 나와 그동안 현실화되지 못했다. 산업부는 전력·가스 시장 개방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안을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만들어 발표할 계획이다. 채희봉 실장은 "요금 인상 우려에 대해서는 완화할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